의-약대생 수능 재도전 급증..
기사입력 2000-11-08 11:30
의약분업 이후 대규모 유급사태가 우려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의·약대생들이 학교를 떠나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등 일부 저학년생들은 전과·전학을 시도하고 있고， 고학년의 본과생들은 미국의사시험 'USMLE'를 대비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K대학의 L군(본과 1년)은 "아직 전공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예대생들'(1∼2학년) 뿐 아니라 본과생 중에서도 전공을 바꾸고자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전했다.
또 "서울지역 의대생의 30%가 USMLE를 고려중"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E대학의 H양(본과 1년)은 "선배들 상당수가 미국의 USMLE를 준비하는 게 사실"이라며 "나 역시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돼서 뭘 어찌해보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공부 좀 더해서 상위권 대학으로 전학하겠다"는 학생들도 있다. D대학의 J양(약학부 1년)은 "올해가 수능 시험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마음 놓고 수능 준비에만 전념할 수도 없는 상황. 의대생들은 이달 18일을 전후해 수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집단 유급을 당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의대 학사행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이래저래 좌불안석이다.
불안을 반영하듯 이들은 대개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대학내 도서관이나 전산실을 이용해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일부 수능 전문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투쟁 상황을 살피고 집회에 참여하며 학교 주변을 맴돌고 있다.
특히 지난달 31일 전국의대생들의 총투표 결과 '유급 불사'가 결의됐지만 '수업 복귀'를 희망하는 학생들도 47.3%에 달해， "과연 모든 학생들이 유급을 불사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이는 등 불투명한 향후 향방에 대한 소식을 접하기 위해 '안테나'를 접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탈현상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전공과목에 대한 회의'와 '불투명한 전망에 대한 우려'. 서울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유승범 위원장(본과 4년)은 "순수한 꿈을 갖고 의대에 들어왔지만 비양심적 의료행위를 유도하는 제도로 인해 자괴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는 것 같다"며 정부의 제도개혁을 촉구했다.
<차병선 기자 acha@-정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