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정 훈, 그의 야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라운드에 설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최근 롯데에서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한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내야수 정 훈이다. 2군에서 올라온 후 12일 부산 롯데전에서 홈런 1개 포함, 3안타를 몰아치며 화제가 된 정 훈은 16일 인천 SK전에서 승기를 잡는 스리런 홈런을 쳤고 17일 넥센전에서는 올시즌 첫 장내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 중이다. 조성환이 자리를 비웠던 2루 수비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사실 정 훈은 선수로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정 훈은 마산용마고를 졸업하고 2006년 현대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하지만 1군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채 팀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정 훈은 당시를 생각하며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어디로라도 숨고 싶었다. 그래서 방출된 후 2주 만에 군에 입대해버렸다"고 했다.

군 생활도 쉽지 않았다. 일반 현역병으로 전방사단에 배치됐던 정 훈은 포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무거운 포를 매일깥이 어깨에 짊어질 때면 '아, 이제 야구선수로서는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정 훈은 전역 후 용돈이라도 벌자는 취지로 마산 양덕초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당시 마산용마고를 이끌던 박동수 감독(현 엔씨소프트 스카우트 팀장)의 눈에 띄었다. 정 훈의 자질이 아깝다고 생각한 박 감독은 정 훈에게 롯데 신고선수 테스트에 응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했다. 정 훈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해보자 마음을 먹었었다"고 했다.

그렇게 2010년 롯데 신고선수로 입단하며 다시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을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이 생활 역시 쉽지 않았다. 정 훈은 "어린 선수들과 함께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려니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지난해 29경기에 나서 1할5푼6리의 타율에 그쳤다.

하지만 올시즌 기회가 찾아왔다. 뛰어난 타격능력과 안정된 수비력을 눈여겨 본 양승호 감독이 정 훈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정 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투지있는 플레이로 공수 모두에서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정 훈은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니 운좋게 좋은 결과가 이어지는 것 같다"며 "이렇게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 훈은 다시 주전이 아닌 백업 멤버의 신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전 2루수 조성환이 부상을 털고 18일 팀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 감독은 정 훈에 대해 "2루, 3루를 책임지는 전천후 백업요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인 역시 "주전, 비주전 여부를 떠나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정 훈의 야구인생,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다.


김 용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