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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아 유소연, 발랄 DNA로 여자골프 새 지평 열다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1-07-12 09:34


◇유소연. 스포츠조선 DB

2011년 US여자오픈 챔피언 유소연(21·한화)은 12일(한국시각) 서희경(25·하이트)과의 역사적인 '한국인 첫 LPGA 메이저 대회 연장 승부'를 마친 뒤 한국선수들의 국제대회 우승 장면에서 늘 빠지지 않는 눈물 대신 환한 웃음을 보였다. 바로 들이대는 미국 현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도 유창한 영어로 또박 또박 소감을 밝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족, 스폰서, 골프 스승, 자신의 영웅이었던 박세리 등 감사 인사 할 곳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소연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선수도 아니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한국투어 상금 상위랭커(4위) 자격으로 어쩌다 초청선수로 참가했다. 아무도 예상못하고 본인 마저도 "목표는 10승이었는데 놀랍다"면서도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유소연은 이런 선수다.

팬들에게 인사 잘 하고, 사인 잘 해주고, 항상 밝게 웃지만 누구보다 강심장이다.

골프계 대표 '엄친아' 유소연의 '발랄 DNA'가 세계 여자골프 중심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유소연의 가정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유창희 54)와 딸 교육에 집념을 보였던 어머니(조광자 55) 사이에서 사랑받고 컸다.

어렸을 때부터 확실한 유망주였다. 초등학교 2학년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학교 특별활동 시간을 통해서였다. 원래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꿈이었다. 유소연은 "바이올린을 먼저 시작했는데 종목을 골프로 바꿨다. 바이올린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평가를 받지만 골프는 스코어로 판단할 수 있어 객관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매력적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분명한 자기 주관의 소유자다.

유소연은 세종초에서 골프 기초를 마스터한 뒤 오륜중-대원외고-연세대를 골프 특기생으로 진학했다. 15세였던 2005년 국가대표가 됐다. 16세였던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따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7년에 시드 선발전을 통과해 2008년에 1부 투어에 합류했는데 곧바로 개막전인 김영주 오픈에서 우승했다. 한국 여자프로골프 신인의 데뷔 우승은 사상 최초다. 2009년 한해에만 5승을 따냈고, 지난해 우승없이 준우승 3번을 했지만 슬럼프는 잠시였다. 올해 다시 부활했다. 지난달 칸타타 오픈에서 우승한 뒤 US여자오픈까지 석권했다.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50야드 내외로 국내에선 장타자로 분류되지만 미국 무대에선 보통이다. 하지만 기계적인 쇼트게임과 아이언샷이 강점이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유소연의 장점은 긍정적인 마인드다. 유소연은 "일몰로 경기가 중단됐는데 오히려 잘됐다. 오늘 좋은 조건에서 정상적인 샷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짜증보다는 모든 분위기를 내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자신의 영웅인 박세리와 함께 있는 것도 부담보다는 응원으로 여겼다. 유소연은 "내가 골프채를 잡고 며칠 안 돼 박세리 언니가 1998년 US오픈에서 우승하는 것을 TV로 봤다. 나는 '세리 키즈(박세리의 영향으로 골프를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여자 유망주 골퍼들. 신지애 김인경 김송희 등)'다. 내 마음속 영웅이 연장전 동안 같이 응원해주고, 샴페인도 뿌려줬다. 정말 특별한 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승부를 연장으로 이끈 4라운드 마지막 18번홀 버디 퍼팅은? 비결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나는 퍼팅을 잘 한다. 나는 좋은 선수다'라고 속으로 외쳤다.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긴장을 풀었다."

사실 유소연의 가장 큰 약점은 퍼팅이다. 늘 퍼팅 때문에 고민이 컸다. 하지만 US여자오픈에서 보여준 유소연의 퍼팅은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를 방불케 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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