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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부상 중인 핵심선수들이 돌아오면 다시 강팀이 될 것이다."
경기에서 승리한 상대편 감독이 예의상 남기는 공치사일까. 그런 것 치고는 매우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표현들이 등장한다.
에메리 감독이 이끄는 애스턴 빌라는 10일 새벽(이하 한국시각) 영국 버밍엄 빌라파크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로 치른 2024~2025시즌 FA컵 4라운드(32강)에서 2대1대로 승리하며 16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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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토트넘은 3일 사이에 두 개의 컵대회에서 탈락하는 좌절을 경험했다. 지난 7일 리버풀을 상대로 치른 카라바오컵 준결승 2차전에서 0대4로 참패하며 1, 2차전 합산스코어 1-4로 결승행에 실패했다. FA컵에서도 우승을 꿈꿨지만, 4라운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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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패배 이후 포스테코글루 감독에 대한 경질 전망이 더욱 커졌다. 지난 시즌 처음 토트넘 지휘봉을 잡아 리그 5위의 호성적을 낸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번 시즌에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4위에 그치고 있다. 상위권 도약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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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컵대회의 선전을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카라바오컵 준결승 1차전에서 리버풀을 1대0으로 꺾으며 품었던 결승 진출과 우승에 대한 희망은 2차전의 참패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FA컵도 마찬가지다. 애스턴빌라에 덜미가 잡혔다.
다니엘 레비 회장을 비롯한 토트넘 수뇌부는 애스턴빌라 전을 '포스테코글루 경질'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었다. 원래 시즌 초중반 성적이 극도로 부진할 때도 경질 여론이 컸지만, 레비 회장과 토느넘 수뇌부는 버텼다. 그러나 카라바오컵 결승행 실패가 결정타가 됐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당장 자르라는 목소리가 커졌고, 구단 수뇌부는 애스턴빌라전을 마지막 기회로 봤다. 여기서도 지면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경질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TBR풋볼은 8일 '리버풀전 패배로 경질 위험이 커진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다음 애스턴빌라전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토트넘에서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기브미스포츠도 '토트넘이 만약 애스턴빌라와의 FA컵 4라운드에서 패해 불과 며칠 만에 두 개의 컵대회에서 연이어 탈락한다면,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보드진은 애스턴빌라전 승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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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계속 쏟아지고 있는 핵심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정상전력을 가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감싸고 있다. 분명 변명은 아니다. 토트넘은 진짜 심각하다. 부상자가 10명 넘게 나왔는데, 하나같이 핵심 선수들이다. 오죽하면 '부상자들만으로 베스트 11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절박한 상황과 토트넘의 처참한 현실은 적장인 에메리 감독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영국 TBR풋볼은 10일, '에메리 감독이 FA컵 승리 후 토트넘이 언제 쯤 다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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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예의상 한 이야기는 아니다. 같은 전술가이자 EPL구단의 감독 입장에서 느끼는 공감대, 그리고 일종의 동병상련 등의 감정이 담긴 말이다. 에메리 감독은 진심으로 토트넘이 부상 이슈 때문에 지금처럼 부진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은 왜 다니엘 레비 감독이 선뜻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경질하지 못하는 지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계획하고 구성한 선수들로 정상 전력에서 경기를 치러 깨진 상황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즉, 현재의 부진을 포스테코글루 감독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나 부상자가 11~12명이나, 그것도 주전급 선수 사이에 발생한 상황에서는 그 어떤 감독을 데려와도 상황을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수습하게 두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게다가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경질한다면 위약금도 크다. 1000만파운드(약 180억원)에서 1200만파운드(약 216억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레비 회장의 입장에서는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경질하는 건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일부 팬들의 격앙된 감정만을 충족시킬 뿐이다. 스쿼드 자체의 힘과 경쟁력이 부상 이슈로 인해 크게 저하된 상황에서 1000만 파운드 이상을 쓰면서 감독을 교체해봐야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유임하려는 게 토트넘 보드진과 레비 회장의 전략적 판단이자 진짜 속사정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