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조호르전 하프타임에 오후성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정효 감독. 사진(용인)=윤진만 기자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이정효 광주 감독은 22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과의 2024~2025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후반 도중 경기장을 향해 호통을 쳤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회색 정장이 몽땅 젖은 채로 손짓, 발짓을 써가며 경기장 어딘가로 소리를 내질렀다. 바닥에 있는 공도 강하게 던졌다. 처음엔 판정에 대해 어필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주심은 이 감독이 바라보는 방향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이 감독이 대상으로 삼은 건 다름아닌 광주 골키퍼 김경민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우리 축구를 하지 않고 롱볼을 하려고 했다"고 말한 걸 미루어 짐작할 때, 빌드업의 시작점이 돼야 할 김경민이 수비수에게 짧은 패스를 건네지 않고 롱 패스를 시도한 행동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추정할 수 있다. 광주 미드필더 정호연은 "감독님이 공을 바닥에 던지는 모습을 봤다. 오늘 특히 무서웠다"고 했다.
걱정이 되는 장면은 그 이후에 발생했다. 광주 벤치 쪽으로 방향을 돌린 이 감독이 순간 비틀거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주변에 있던 코치들과 스태프가 이 감독에게 다가갈 정도였다. 웬만해선 벤치 의자에 앉지 않는 이 감독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 감독은 전반전부터 '기술 지역'에서 때로는 광주 선수들에게 호통을 치고, 작전 지시를 하고, 때로는 격려를 하며 에너지를 쏟아부은 터였다. 심지어 아사니(광주)의 멀티골로 전반을 2-1로 리드한채 마친 이후에도 작전판을 들고 미드필더 오후성이 있는 경기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직접 열정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뒤 터널 쪽으로 걸어가는 오후성을 향해 큰 소리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감독은 후반 상대 자책골로 3대1 승리를 거둔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선수들이 고생해서 준비한 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 빌드업, 사이드 플레이, 전환 플레이, 아사니를 '프리(Free)'로 만들어주는 플레이가 나오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쥐어짰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친 놈처럼 소리를 지른 건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분명 2골차 승리를 통해 처음 도전하는 ACLE에서 3연승을 질주한 팀 수장의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통은 요코하마 F.마리노스, 가와사키 프론탈레(이상 일본)에 이어 말레이시아 강호 조호르를 꺾었다면 선수들에게 채찍보다는 당근을 건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기대 이상으로 개개인 능력이 좋은 조호르를 상대로 광주 선수들이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와 공간 활용으로 대표되는 광주식 공격 축구를 펼치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안타까워 죽겠다는 듯, 흥분하고 격노했다. 2022년 광주 지휘봉을 잡아 1년 만에 1부로 승격하고, 지난 시즌 K리그1에서 깜짝 3위를 차지하며 광주 역사상 첫 아시아 무대 티켓을 선물하는 과정에서 밤낮없이 전술을 연구하고 90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정효의 열정'이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인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때때로 지나친 열정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이 감독의 한 측근은 "건강이 걱정되어 몇 번이나 흥분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해봤지만 통하지 않는 느낌"이라고 우려했다. 한 선배 지도자는 "프로 감독은 스트레스가 극심한 직업이다. 매 경기 기진맥진한 이 감독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열정 관리'가 어느 정도는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광주시와 광주 구단도 마냥 이 감독의 열정에만 기대려고 해선 안된다. 잔디 문제로 광주에서 250㎞ 떨어진 중립경기장에서 홈 경기를 치른 '국제적 망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조치가 필요하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