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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후회없는 경기를 하길."
공교롭게도 5년 전인 2018년 러시아월드컵, 신태용 감독이 이끌던 남자 A대표팀과 똑 닮은 상황이다. 당시 신태용호는 2연패의 절망 속에 러시아 카잔에서 디펜딩챔프이자 FIFA랭킹 1위인 독일과 조별리그 3차전을 치렀고, 김영권, 손흥민의 연속골에 힘입어 2대0으로 승리하며 '카잔의 기적'을 썼다. 독일에게 2차 대전 이후 최초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안기며, 최악의 상황에서 한국 축구의 희망을 길어올렸던 한국 축구사의 대사건이다. 1일 호주 시드니 인근 캠벨타운 팀 호텔에서 만난 미드필더 이영주(마드리드 CFF)는 '카잔의 기적'을 언급하는 취재진의 질문에 "선수들 사이에 그 경기 이야기가 나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한 팀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희망이 있다"며 투지를 불살랐다.
인도네시아 A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는 신 감독은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 브루나이전(10월 12일, 17일)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대한민국의 여자월드컵 소식도 빼놓지 않고 챙기고 있었다. 콜롬비아, 모로코에 2연패해 16강행이 어려워진 상황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했다. 5년 전 자신이 이끌던 러시아월드컵 남자대표팀처럼 절망의 끝에서 독일전 마지막 실낱 희망을 불태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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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의 기적'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베테랑 조소현은 "축구는 팀 스포츠이고 23명의 스쿼드상 우리가 독일에 객관적 전력상 밀린다"고 냉정하게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또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23명의 선수들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을 쉽게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현재 멘탈, 신체적으로 다운된 것은 확실하지만 23명이 모두 같은 생각으로 독일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눈을 빛냈다.
십자인대 부상을 털고 두 번째 월드컵 첫 무대를 간절하게 준비중인 이영주는 "벨 감독님이 '이 작은 희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포기해선 안된다'고 하셨다. 저희 역시 이 작은 틈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결과로 보여드릴 것"이라고 했다. 2002년생 막내 공격수 천가람은 "남들은 '안봐도 되는 경기. 한국이 어떻 이겨?' 생각하겠지만 작지만 희망이 있다는 건 저희에겐 중요하다. 그 작은 희망을 좇아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 출전시간이 주어진다면 후회없는, 부끄럽지 않는 경기를 해보고 싶다"는 다짐을 전했다. "아주 작은 희망이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저걸 좇는다고?'하겠지만 우리는 4년간 그걸 좇아왔고 남은 기간 그걸 위해 미쳐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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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필요한 시간이다. 신 감독은 '카잔의 기운'을 여자축구대표팀에 전해달라는 요청에 짧고 굵은 응원의 메시지로 답했다. "후회없는 경기를 하길.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후회없는 경기를 하길."
한편 여자축구 대표팀은 2일 오전 브리즈번으로 이동해 현지시각 오후 3시 공식기자회견, 오후 4시30분 브리즈번 스펜서파크에서 공식훈련을 갖고 '후회없는' 마지막 도전을 준비한다.
시드니(호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