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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재밌자고 한 일이 '다큐'가 돼 버렸다.
무관중 경기 이벤트의 재밋거리로 '리얼 마네킹'을 기부 형식으로 단기 임대받은 것이다. 하필 '리얼 마네킹'이 성인용품으로 불리는 '리얼돌'을 연상케 하는 바람에 격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리얼돌'은 이전부터 뜨거운 주제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자 '리얼돌의 수입·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이후 올해 들어서는 법망을 피한 '리얼돌 체험방'이 급증하면서 불법 유사성매매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최근 이태원 클럽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때 본질을 벗어난 '성소수자 편견' 문제로 불똥이 튀었듯이 '리얼돌'을 대하는 시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민감한 주제가 공공장소(축구장)에 등장했으니 논란이 커진 것이다. 네티즌 댓글 반응과 축구계 주변의 여론을 살펴보면 상반된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한쪽은 대다수이고, 다른 한쪽은 소수이기는 하다.
'리얼 마네킹'을 제공한 업체는 '(주)달콤'이란 신생 프리미엄 마네킹 제작업체다. 이 업체 대표가 17일 해명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음지에서 '리얼돌'로만 치부되는 정밀묘사 마네킹을 패션 업계에서도 활용될 수 있도록 양지로 끌어내자는 의욕으로 창업했다. K리그 무관중 소식을 듣고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먼저 제안한 것은 맞다. 하지만 연맹이 해당 이벤트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 연맹은 관련 행사에 대한 권한이 없기에 FC서울을 소개해줬을 뿐이다. FC서울 구단은 달콤 측과 면담하면서 '혹시 리얼돌로 오해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리얼돌'과는 상관없는 제품이라는 확답을 받았고, 업체 측의 주장을 믿었다. 이후 '달콤'은 운반 과정에서 오해받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구단으로부터 유니폼 등을 받은 뒤 회사에서 옷을 입혀 경기장에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수량이 부족하자 달콤이 과거 성인용품 BJ 관리업체(소로스)에 샘플로 납품했던 10개를 추가했다. 반품받은 10개 가운데 2개의 마네킹이 들고 있던 응원문구 핸드피켓에 문제의 성인용품 브랜드 '소로스'와 BJ 예명 '사샤', '채로'가 보도 사진을 통해 노출됐다. 이후 또다른 논란으로 성인용품 업체 '달콤스퀘어'와 '(주)달콤'이 같은 회사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달콤스퀘어'와 '소로스'는 모기업 '컴위드'의 관계사다. 이에 구단이 확인한 결과 '달콤'과 '달콤스퀘어'는 다른 회사였다.
다수의 비난파 "감히 공적 장소에 리얼돌을"
문제의 마네킹 논란은 대다수가 불쾌감을 표시하며 신중하지 못한 구단 측 행동을 성토하면서 크게 확산됐다. 성인용품 '리얼돌'과 너무 흡사한 마네킹을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축구장에 설치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응원문구에 등장한 BJ 예명과 성인용품 브랜드명이다. 의도를 갖고 노출한 것은 아니지만 보는 이에게 불쾌감을 준 것은 사실이다. 사전에 이를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한 업체와 구단 측도 사실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구단은 사과문을 통해 '문제의 응원문구를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한 점이 문제였습니다. 이점은 변명없이 저희의 불찰입니다'라고 인정했다.
소수의 관망파 "X 눈에는 X만 보이나"
'그렇게 분노할 일인가. X 눈에는 X만 보인다더니…'라는 소수 반응도 있다. '리얼돌'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그냥 마네킹으로 보는데 '리얼돌'을 떠올리고 BJ 예명까지 알아차린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성인용품 비사용자들은 BJ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구단 담당자도 요즘엔 워낙 다양한 온라인 ID명이 많아서 문제의 예명을 의심하지 못할 수 있다. 성인용품을 기웃거리지도 않았으니 음란물로 생각 못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더구나 관련 보도에 첨부된 사진은 그냥 사진으로 보면 마네킹이다. 애써 사진을 확대해야 구석에 작게 적힌 BJ 예명을 발견할 수 있다. 성인용품 비사용자는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마네킹'이라 적어놓고 '리얼돌'이라 읽은 관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리얼돌'을 사전 의미 그대로 '인간을 흉내낸 인형'으로, 편견을 깬 다른 관점으로 대하자는 주장도 있다. 차세대 기술인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 '리얼돌'이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계 관계자는 "연맹 징계니, 구단 담당자에 대한 중징계니 그런 것은 과잉반응인 것 같다. 다수의 불쾌감을 이해하지만 구단이 나쁜 의도를 한 게 아니라면 이 문제를 차분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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