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하나가 된 카카오게임즈-엑스엘게임즈, 아쉬움과 기대 교차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20-02-17 06:00


지난해 10월 열린 '달빛조각사' 미디어 간담회 현장에서 개발사 엑스엘게임즈와 퍼블리셔 카카오게임즈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게임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최관호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왼쪽 2번째부터 오른쪽으로 3명). 사진제공=카카오게임즈

연초부터 국내 게임산업에 빅딜이 성사됐다.

카카오게임즈가 엑스엘게임즈의 지분 약 53%를 취득해 경영권을 인수한다고 지난 11일 공시를 했다. 두 회사는 이미 모바일 MMORPG '달빛조각사'의 개발과 퍼블리싱 관계를 맺은 바 있고, 이에 앞서 카카오게임즈가 2018년 8월 엑스엘게임즈에 100억원을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완전히 전격적인 인수합병 소식은 아니다.

두 회사 모두 각자의 필요성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 것이기에 시너지 효과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카카오게임즈는 한국을 대표하는 개발자와 개발력, IP 등을 품에 안으며 2년전 포기했던 IPO(기업공개)를 다시 재개할 상당한 동력을 얻었다. 다만 엑스엘게임즈로선 위축된 시장 상황으로 인해 가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미래를 품었다

카카오게임즈가 엑스엘게임즈가 발행하는 신주와 함께 송재경 대표가 가진 구주 등을 인수하는데 쓴 돈은 1180억 9218만원이다. 한 해 4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중인 카카오게임즈로선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그만큼 가치가 큰 딜이었기에 과감하게 베팅을 하게 됐다.

다만 두 회사는 계약 사실을 밝히면서 지금처럼 '독립경영'을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카카오게임즈는 개발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퍼블리싱과 플랫폼 사업, 투자 등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엑스엘게임즈는 개발력에 확실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카오게임즈는 엑스엘게임즈가 보유하고 있는 '아키에이지'와 '달빛조각사' 등 검증된 IP를 확보한데다, 송재경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막강한 개발진을 품에 안게되면서 현재뿐 아니라 기업의 미래가치까지 확실히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8년 IPO를 추진하다가 나빠지는 시장 상황을 감안해 스스로 철회한 바 있는데, 올해 다시 추진할 큰 원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카카오게임즈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자사의 가치를 1조원 정도로 평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딜을 통해 당연히 투자금 이상의 가치가 플러스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다소 정체에 빠진 성장세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남궁훈 대표가 창업한 개발사 엔진을 모태로 해 카카오로부터 투자를 받고 다음게임과 합병, 2016년 4월에 정식 출범한 카카오게임즈는 그해 1013억원의 매출을 시작으로 2017년 2013억원, 2018년 4208억원 등 매해 무려 2배씩 성장을 해왔다. 2017년 카카오의 게임사업 부문을 합친 영향이 컸지만, 어쨌든 확실한 메이저 게임사로 자리잡기 위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런데 카카오가 지난 13일 발표한 2019년 실적에 따르면 콘텐츠의 게임 부문, 즉 카카오게임즈의 실적은 3973억원으로 전년 대비 -5%로 뒷걸음친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가 사상 처음으로 3조원 매출을 돌파했고, 게임을 제외한 모든 사업 부문이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달빛조각사'를 출시한 후인 4분기 실적은 1059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7%, 전년 동기 대비 6% 성장하며 확실한 회복세를 보였다. 결국 매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IPO를 위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선 당연히 인기 라인업 확보가 관건이기에, 이미 맞손을 잡고 있던 엑스엘게임즈 인수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과정인 셈이다.

다시 뛸 동력 얻었다

사실 이번 M&A는 두 회사가 합치는 이상의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엑스엘게임즈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을 개발한 한국의 대표 개발자 송재경 대표가 지난 2003년 설립한 게임사로, 2013년 출시한 온라인 MMORPG '아키에이지'는 그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을, 그리고 지난해 출시한 모바일 MMORPG '달빛조각사'로 최우수상을 각각 수상했다. 이제 만 4년째에 접어드는 카카오게임즈가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인수한 것은 현재 국내 게임산업의 판도를 보여준 것이다.

다만 엑스엘게임즈가 잠재력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시각도 있다. 우선 올해로 출시한지 7년을 맞는 '아키에이지'는 초반보다는 분명 줄었지만 여전히 국내와 글로벌 64개국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이미 국내외에 다수의 계약을 할 정도로 검증된 게임으로 향후 확장 가능성이 엄청난 IP라 할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게임사들이 인기 IP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귀하디 귀한' IP라는 점이다. 송재경 대표와 김민수 이사 등 국내에서 대작 게임을 진두지휘할 몇 안되는 네임드 개발자에 대한 존재감도 인수가에 크게 반영되지 못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는 최근 넥슨의 넷게임즈 투자 사례에 견줘봐도 알 수 있다. 넥슨은 2016년 당시 'HIT'(히트)를 개발하고 있는 박용현 대표의 넷게임즈에 392억원을 투자해 22.4%(이후 넷게임즈 추가 주식 발행으로 18.3%로 지분율 축소)를 확보한데 이어, 2018년 5월에 1450억원을 투자해 30%를 추가로 인수하며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즉 넷게임즈의 48.3%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1842억원을 투자한 셈이다. 넷게임즈가 'HIT' 이후 '오버히트'를 성공시켰고 이어 지난해 출시한 'V4'까지 인기를 모으면서 넥슨의 투자는 인정을 받고 있다.

결국 엑스엘게임즈 지분이 매물로 나왔을 때 여기에 베팅할 국내외 게임사들이 카카오게임즈 외에는 거의 없었던 것이 이유라 할 수 있다. 코웨이 인수로 이미 거액을 투자한 넷마블, 지난해 지분 매각 실패 후 내부 개발작과 개발 인력에 대한 정리로 외부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넥슨, 자체 보유한 IP로 모바일 MMORPG를 만들고 큰 성공을 거두고 있어 굳이 외부 IP가 필요하지 않는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들이 뛰어들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매수자인 카카오게임즈 우위의 시장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런 아쉬움은 있지만, 대신 엑스엘게임즈는 그동안 매출 창출을 위한 힘겨운 경쟁 대신 스스로 잘하는 개발에 더욱 진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인력들이 떠나야 했는데, 이번에 유입되는 자금으로 다시 보강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개발사로 다시 자리매김할 기대도 받고 있다. 게임사의 한 임원은 "대형 게임사들의 극소수 게임만 성공을 거두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게임 산업에 대한 외부의 투자 유인이 계속 감소하는 상황이 이번 딜에 반영된 것 같아 상당히 아쉽다"면서도 "개발과 퍼블리싱에 특화된 두 회사의 분업 구조가 어떤 시너지 효과를 거둘지 기대감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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