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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깜깜이' 평양 원정, 중계, 취재진, 응원단에 관중까지 없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9-10-16 05:30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이런 경기가 앞으로도 또 있을까.

생중계는 없었다. 응원단은 커녕 관중도 없었다. 남측 취재진도 물론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세상에 없던, 앞으로도 없을 '깜깜이' 경기였다.

한국이 15일 오후 5시30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펼쳐진 '중계 없는' 북한과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원정 3차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예선전적 2승1무로 북한과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7골)에서 앞서 조 1위를 달렸다.

경기 결과를 떠나 숱한 해외토픽감 화제를 남긴 한국 남자축구 29년만의 평양 원정이었다. 시작부터 불안했다.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에 도전하는 벤투호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 H조를 배정받았다. 비교적 무난한 조라는 평가 속 불안요소가 있었다. 북한이었다. 북한과 한 조가 되며 원정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남북 관계가 나쁘지 않아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경기가 다가올 수록 꼬이기 시작했다. 홈경기를 주관하는 북한 측에서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북미 관계, 남북 관계가 냉각된 가운데 벤투호의 평양 원정은 최악의 분위기 속 진행됐다. 경기가 평양에서 열리는지 여부도 불확실했다. 지난달 24일에서야 경기 진행이 확정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아축구연맹(AFC) 담당 부서와 북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회의를 진행했다"며 "월드컵 2차 예선은 예정대로 평양에서 열리며, 우리 대표팀도 H조 다른 팀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정된 후가 문제였다. 스케줄, 이동경로, 방북 인원 등 어느 하나 정해지는 것이 없었다. 경기 개최 4일 전에서야 북한축구협회로부터 선수단 55명(선수 25명+스태프 및 임원, 관계자 30명)에 대한 비자 발급을 진행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북한축구협회는 원칙적으로 선수단 25명의 방북만을 허용했고, 벤투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와 트레이너, 조리장 등 지원 스태프, 대한축구협회 임원 등 관계자, 문체부, 통일부 관계자 등을 모두 통틀어 최대 20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대한축구협회가 AFC를 통해 선수단 지원을 위한 스태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지속적으로 방북 인원을 30명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10일이 북한의 국경일이었던 탓에 11일 오후에야 최종 답신이 도착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요청대로 30명으로 확대하는 데는 동의했으나, 취재진 및 응원단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북한전의 내용을 전달할 취재진은 물론, 응원단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깜깜이 원정의 시작이었다.

선수단은 부랴부랴 스케줄을 확정했다. 13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14일 북한 평양으로 입국한 후 15일 경기 직후 16일 다시 베이징을 거쳐 귀국하기로 했다. 선수단은 일단 무사히 평양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설마설마했던 중계가 불발됐다. 방송사와 정부는 마지막까지 북한측과 협상을 이어갔지만,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21세기, 축구를 문자로 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현지 사정은 예상대로 열악했다. 인터넷 연결 상황이 좋지않아 현지에 파견된 축구협회 직원이 이메일로 기본적인 현장 정보를 전하는 데 애를 먹었다. 14일 열린 기자회견 내용이 15일이 돼서야 전달될 정도였다. 협회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있는 AFC 경기감독관을 통해 경기장 상황을 어렵게 들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AFC 경기 감독관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어 간접 통신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달 과정이 쉽지 않았다. AFC 경기 감독관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AFC 본부에 현지 상황을 알리고, AFC 본부에서 현장 상황을 취합해 이를 축구협회에 다시 알리는 '다단계 과정'을 거쳤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킥오프 직전 다시 한번 황당한 소식이 들렸다. 대한축구협회는 "킥오프 30분 전인데도 김일성 경기장에 관중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라며 "경기장에는 외신 기자들도 전무한 상태다. 킥오프를 했는 데도 무관중"이라고 전했다. 결국 킥오프 후에도 관중은 들어오지 않았다. 전날 양 팀의 매니저 미팅에서도 이날 경기에 약 4만명의 관중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됐다. 북한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은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킥오프 30분 전을 앞두고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 감독관이 축구협회에 "경기장에 관중이 아무도 없다. 외신 기자도 없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알려왔다.

결국 29년 만에 평양 원정에 나선 한국 축구대표팀은 북한과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이날 경기에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까지 관전했지만 북한은 '무관중 상태'로 킥오프에 나섰다. 그야말로 축구 역사에 기록될만한 역대급 원정이었다.

한국은 다음달 14일 레바논과 2차예선 원정 4차전을 벌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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