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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환의 월드컵 에필로그]인터넷을 안 보고 이겨낸 장현수, '강심장'으로 임명합니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8-06-28 17:01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과 독일의 조별예선 3차전이 27일 오후(한국시각)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렸다. 장현수가 공격하고 있다. 카잔(러시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6.27/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과 독일의 조별예선 3차전이 27일 오후(한국시각)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렸다. 한국이 독일에 2-0 승리를 거뒀다. 장현수와 신태용 감독이 포옹하고 있다. 카잔(러시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6.27/

'욕받이'였던 장현수에게 먼저 큰 박수부터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텐데 독일과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훌륭하게 잘 마쳤습니다. 주 포지션도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한국의 2대0 승리에 일조했습니다. 공격포인트 같은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습니다.

장현수는 이번 월드컵에 나간 태극전사 23명 중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선수로 기억될 겁니다. 그는 스웨덴전(0대1 패)과 멕시코전(1대2 패)에서 연달아 실수를 했지요. 스웨덴전에서 결과적으로 나쁜 패스 미스가 많았고, 멕시코전에선 태클 타이밍이 안 좋아 핸드볼 반칙을 했고, 그게 실점의 빌미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2패를 당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선 그를 향한 비난의 강도가 도를 넘길 정도로 지나쳤습니다. 장현수는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심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는 멕시코전 후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후배 손흥민의 가슴에 안겨 펑펑 울었습니다. 그는 "팀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합니다. 팀원들 얼굴 보기가 미안했던 거죠. 그렇지만 장현수는 독일전을 앞두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신태용 감독이 독일전을 앞두고 장현수에게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장현수는 출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수비수 장현수의 기량은 국내 최고라고 보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신 감독은 그런 장현수를 독일전에 벤치에 앉혀두고 시작하는게 맞지 않다고 봤습니다. 1~2차전 실수가 있었지만 주장 기성용이 종아리 부상으로 못 나가는 상황에서 장현수가 꼭 필요했던 겁니다. 대신 장현수의 위치를 조금 덜 부담스런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 단계 올려 세웠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장현수가 예전에 봤던 포지션이기도 했고요.

장현수는 독일전에서 시쳇말로 죽기살기로 뛰었습니다. 독일이 파상공세를 퍼부을 때는 수비라인까지 내려와 5백을 이루며 리딩을 했습니다. 장현수의 최대 장점이 수비수들을 잘 이끈다는 겁니다. 또 역습할 때는 공격라인까지 전 속력으로 내달리기도 했습니다. 장현수의 움직임과 플레이는 마치 1~2차전 실수를 속죄하려는 몸부림, 절규 처럼 보였습니다.

신은 1~2차전 때 장현수에게 너무 가혹했습니다. 2경기 연속으로 장현수에게만 혹독했습니다. 손흥민은 멕시코와의 2차전을 마치고 "왜 이번에도 현수형인지 아쉽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장현수의 의지는 강했습니다. 그는 이번 러시아월드컵 1~2차전으로 평생 잊지 못할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청와대 민원 게시판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 마녀사냥이 벌어졌습니다.

장현수는 인생 최대 위기에서 매우 현명하게 대처했습니다. 그는 독일전 후 인터뷰에서 "인터넷을 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간단 명료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그를 '죽일 놈'이라고 욕했지만 장현수는 그걸 원천봉쇄한 셈입니다. 그렇더라도 장현수의 마음이 편했을 리 없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길에 만난 한 대한축구협회 고위 임원은 독일전 승리 이후 장현수가 라커룸에서 많이 울었다는 뒷얘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축구팬들은 비판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투혼을 발휘해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마지막에 세워준 장현수를 비롯한 태극전사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줄 넓은 아량도 필요합니다. 카잔(러시아)=스포츠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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