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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돌풍 '명품 조연' 손정현 "키퍼 돋보이지않아야 강한 팀"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8-03-21 05:20




"제가 인터뷰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경남의 골키퍼 손정현(27)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라운드에서 포효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무척이나 수줍고 조심스럽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축구, 올해로 약 18년 간 선수 생활을 해왔지만, 인터뷰는 해본 적이 없단다. "제가 처음이라서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그리고 제가 인터뷰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승격팀' 경남은 올 시즌 K리그1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3라운드까지 3전 전승으로 리그 선두 질주를 하고 있다. 3경기에서 8골을 터뜨렸다. 리그 최다득점 팀. '괴물' 말컹을 필두로 네게바, 쿠니모토 등 외국인 선수들이 주목받고 있다. '중원의 사령관' 최영준은 압도적인 기량으로 미드필드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파괴력 넘치는 화력 뒤에 정작 견고한 수비력이 가려져 있다. 경남은 3경기에서 단 2실점만 했다. 리그 최소실점 팀이다. 그 중심에 골키퍼 손정현이 있다. 손정현은 1m91의 장신으로 공중볼 처리에 강점을 갖췄다. 여기에 동물적인 감각으로 환상적인 선방을 경기당 3~4개씩 하고 있다.

'무결점 방어'를 선보이고 있는 손정현. 그는 '늦깎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축구를 처음 시작했던 그는 원래 수비수였다. 손정현은 "중앙 수비, 풀백 등을 전전했는데 기량이 딸려서 중3 때 축구를 관두려했다. 그런데 당시 감독님께서 신체조건이 좋으니 골키퍼를 해보라고 하셨다. 그 때부터 골키퍼를 봤다"고 했다.

늦게 시작했던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손정현은 "골키퍼로 전향했을 때 학교엔 골키퍼 코치가 없었다. 필드 코치들과 동료 선수들이 때리는 슈팅을 막는 게 훈련의 전부였다"라며 "그 외엔 계속 혼자 훈련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형들의 놀림도 많았다. 아무래도 기본기가 부족하다보니 '너 정말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손정현은 여린 마음의 소유자다. 타인이 가볍게 던진 농담은 그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자책도 많이 했다. "내가 정말 팀에 쓸모 없는 선수에 불과한가 생각했다. 재능도 뛰어난 것 같지 않고, 가진 건 신체조건인데…. 못 따라가는 내 자신이 너무 미울 때도 많았다."

손정현은 2014년 경남에 입단했다. 좁디 좁은 취업문을 통과했지만, 그 뒤에도 '늦깎이의 설움'은 있었다. 손정현은 "역시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던 탓인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기본기가 많이 떨어졌다. 출전 기회도 거의 잡지 못했다"고 했다. 손정현은 프로 첫 해 리그 6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2015년은 달랐다. 리그 39경기에 나서 42실점을 했다. 손정현은 "그 때 동계훈련 때도 썩 좋지 않아 '올해도 안되겠다' 했는데, 주전급 골키퍼들이 부상, 컨디션 난조를 겪어 내게 기회가 왔다"며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이 악 물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리를 잡나 싶더니 2016년엔 경찰청에 입대, 안산 무궁화(현 아산 무궁화)의 일원이 됐다. 2년간 12경기 출전에 불과했다. 손정현은 "입대 첫 해엔 좋은 선후임들과 너무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제대가 다가오니 초조해졌다. 그 때 경남도 워낙 잘 하고 있어서 '내 자린 없겠다'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부 경남 감독은 손정현을 외면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손정현에게서 '간절함'을 발견했다. 주전 골키퍼 이범수도 부상을 해 출전 기회는 손정현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손정현은 K리그1에서 선방쇼를 펼쳐오고 있다. 손정현은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주목을 받은 적 없었다. 이런 인터뷰 기회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사하지만, 사실 골키퍼는 돋보여선 안되는 존재가 맞다"라며 "골키퍼가 선방할 일이 없는 게 진정한 강팀이다. 팀만 승승장구할 수 있다면 나는 뒤에서 조용히 박수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며 웃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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