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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감독은 무슨…. 그냥 코치입니다."
부산 이승엽 감독대행(42)은 대한축구협회 미디어담당자가 자신을 "감독님"이라고 부르자 손사래를 쳤다. 지난달 29일 울산과의 FA컵 결승 1차전을 앞두고 공식 경기 전 인터뷰를 준비할 때였다.
이 대행에게 진짜 감독은 여전히 고(故) 조진호였다. 벤치의 감독석을 항상 비워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진호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 감독대행을 맡은 그는 고인의 영전에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두 마리 토끼(클래식 승격, FA컵 우승) 사냥에 나섰으나 모두 놓치고 말았다.
결과는 빈손이지만 임시 지도자였던 이 대행이 낙제점인 건 결코 아니다. 이른바 '땜질 감독'으로서 시즌 막판 쏟아부은 의리와 열정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이 대행은 지난 10월 10일 고 조진호 감독의 지시에 따라 R리그를 챙기기 위해 지방으로 출장가던 중 황망한 비보를 접했다. 급히 발길을 돌려 빈소를 지키면서도 남은 일정을 위해 선수단을 수습해야 했다. 얼떨결에 감독대행이란 중책을 맡았다.
이후 부산은 챌린지 정규리그가 끝날 때까지 3승1무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정규리그 2위를 조기에 확정한 터라 사실 져도 그만인 잔여경기들이었지만 한 경기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감독 별세로 선수들이 동요하고 분위기가 급추락 할 만한 데도 부산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이 대행이 중심을 잡고 선수단을 단단히 컨트롤하는 등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아산과의 챌린지 플레이오프까지 승승장구하던 부산이 상주와의 승강 PO와 울산과의 FA컵 결승에서 밀려난 것은 한으로 남는다. 하지만 감독 별세, 부상자 속출 등 처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질타보다 격려의 박수를 쳐 줄만한 결과다. 사실 운도 없었다. 상주와의 승강 PO 2차전 VAR(비디오판독 시스템) 사건이 그랬고, 울산과의 FA컵 결승 2차전 골대 강타가 그랬다. 두 차례의 빅매치 4경기에서 부산이 보여준 경기내용은 딱히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 대행은 부산 구단에서 주로 유소년팀을 지도했던 터라 "성인팀 지도자로서 많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말한다. "조 감독님이 만들어 놓으신 토대가 탄탄했기에 어깨 넘어 배운 대로 버텨왔을 뿐"이라는 말도 달고 다녔다.
그의 말대로 감독으로서 아직 미완성일지 모르지만 위기 속 부산의 50일짜리 임시 사령탑으로서는 '무명 지도자'의 꼬리표를 털어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 대행에게 조 감독은 축구 선배를 뛰어넘어 '은인'이나 다름없단다. 젊은 시절 포항에서 함께했던 인연으로 1군 코치 기회를 안겨 준 이가 조 감독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부산서 살던 조 감독의 '말벗'이자, '술친구(고인은 술을 즐기지 않아 이 대행이 주로 대신 마셨다)' 역시 이 대행이었다. 그런 그가 고인에게 아직 보여드리지 못해 한으로 맺힌 선물이 있다. 이 대행은 아산과의 PO에서 이정협이 결승골을 넣자 무릎을 꿇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세리머니를 했다. 생전 조 감독의 '전매특허'였다. 당시 이 대행은 "감독님이 너무 그리운 마음에 따라해 보고 싶었다"면서 "클래식에 승격하면 조 감독의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가 달아나면서 그가 따로 준비했던 선물은 빛을 보지 못했다. 불과 50일 동안 완성하기엔 시간이 짧았고 선물의 크기는 너무 벅찼다.
부산은 이제 탈락의 아픔을 추스르고 새 판을 짜야 한다. 그래도 위기에서 팀을 잘 이끌어 준 '축구인' 이승엽을 발견했기에 고민은 조금 덜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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