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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9회연속진출] 0대0은 신태용의 숫자가 아니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7-09-06 11:32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8월 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란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 경기를 펼쳤다.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
상암=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7.08.31

'0대0'은 신태용의 숫자가 아니다. 신태용의 축구는 공격축구다. 설령 지더라도 공격수를 '올인'해 화끈하게 승부수를 거는 '상남자'의 축구가 지도자로서 그의 철학이자, 소신이다.

그랬던 신태용 감독이 달라졌다. 한국 축구의 명운이 달린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에서 그의 축구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이란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우즈벡전도 0대0으로 비겼다. 우즈벡전 후반 염기훈 투입 후 이동국, 황희찬의 기민한 움직임이 살아났던 부분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답답한 '고구마' 공격전개였다. 9회 연속 월드컵행을 이룬 선수단은 내용이 아닌 '결과'를 봤지만, 새벽잠을 설친 팬들은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아닌 '내용'에 주목했다. 이란-시리아전 '경우의 수'에 연연하지 않고, 화끈한 승리와 짜릿한 축포로 월드컵 본선에 자력진출하기를 소망했다.

성남 일화 시절 첫 사령탑이 된 이후부터 신태용 감독의 축구는 대단히 '공격적'이었다. '신공', 즉 '신나는 공격'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진솔하고 화통한 그의 화법과 그의 축구는 닮았다. 올림픽대표팀에서도, 20세 이하 대표팀에서도 줄기차게 공격축구를 표방했다. 1골 먹으면 2골, 2골 먹으면 3골을 몰아치는 도전적인 축구, 신나는 축구를 노래했었다.

지난 5월, '20세 이하 월드컵' 8강 탈락 직후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공격축구를 너무 강조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신 감독은 "물론 토너먼트에서는 조금 더 냉정해져야 한다. 수비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렇게 가야 한다. 하지만 수비축구는 해서는 안된다"고 단언했다. "언제까지 수비축구로 세계를 상대할 것인가. 그렇게 한게임 이긴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우리의 기량이 잉글랜드, 포르투갈과 차이가 나지만, 수비하다 당하는 것보다 '맞불'로 직접 부딪혀 보면 우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수비만 하다보면 우리가 뭘 했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못 느끼고 끝난다. 나는 감독으로서 이기기 위해 경기하지, 비기기 위해 경기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답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공격 스타일'을 일관되게 고수하던 '직진남' 신태용이 이란전과 우즈벡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내려놓았다. 현장에서 "수비에 집중하겠다" "지지 않는 경기를 하겠다" 등 생경한 코멘트가 흘러나왔다. 지면 끝장인 단두대 매치에서 '실리축구'를 했다. 이란-우즈벡전 2경기의 목표는 '구원투수'였고, 축구계의 염원이던 월드컵 9회 연속 본선행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선수단은 감독을 헹가래치고, 태극기를 들어올리며 환호했지만, 이 장면을 보는 팬들은 왠지 불편했다. '공격축구의 아이콘'인 신태용의 대표팀이 끝내 골문을 열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자, 러시아월드컵에서 '신태용 축구'에 바라는 기대치가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란-우즈벡 2연전에서 신중을 기하는 중에도 '신태용 스타일'의 도전도 포기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승부에서 '1996년생 공격수' 황희찬과 '1996년생 센터백' 김민재를 2연전 모두 선발로 기용한 것은 감독의 절대적인 용기이자 신뢰다. 속답답한 최종예선에서 한국축구의 미래와 희망을 엿본 것은 적지않은 수확이다. 20세 이하 대표팀,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을 거치며 나이불문 '핫한' 선수들을 두루 꿰뚫고 있는 혜안과 편견 없는 선택은 신 감독의 가장 큰 무기다. 우즈벡전에서 선보인 '변형 스리백', 장현수 시프트는 실전 적용에서는 아쉬웠지만 감독으로서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야심찬 도전이었다. 전반 구자철, 후반 염기훈의 교체도 적절했다.

2번 연속 '0대0' 승부가 누구보다 아쉬운 이는 사실 신 감독 본인일 것이다. '지고는 못사는 승부사' 신 감독은 우즈벡전 직전 우즈벡 기자로부터 "아직 승리가 없는데…"라는 도발적 질문을 받고 "뭐라는 거야, 지금"이라고 발끈했었다. 누구보다도 이기고 싶었던 경기, 데뷔 첫승을 올리고자 했던 경기에서 또다시 0대0으로 비긴 후 우즈벡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득점이 없는데 월드컵 본선에 가도 수비 축구를 할 것인가" 자존심이 상할 법한 질문에 신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내 스타일을 모르겠지만, 나는 공격 축구를 좋아하는 감독이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비에 중점을 뒀다. 앞으로 한국축구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축구가 한 발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전략상 '일보후퇴'했던 공격축구의 변함없는 소신을 다시 드러냈다.

'신'에게는 길지 않은 9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0대0'은 신태용의 숫자가 아니다. 신태용의 '진짜 축구'는 이제 시작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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