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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월 15일. 멕시코 몬테레이의 테크놀로지코 스타디움엔 5만5914명의 대관중이 들어찼다. 이들의 함성은 경기시작 14분 만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름도 생소한 아시아 변방국의 공격수가 '축구왕국' 브라질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선제골을 터뜨렸다. "오른쪽 측면에서 노인우 선배가 찬 슛이 수비에 맞고 흘렀다. 그런데 궤적이 내가 좋아하는 코스였다. 예전에는 볼을 매달아놓고 슈팅하는 훈련을 했는데 딱 그 정도였다. 자신이 있었고 (볼도 발에) 제대로 얹혔다. 당시 훈련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그런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잘 맞아서 득점이 됐다." 24년 전 득점 장면을 추억하는 김종부 경남 감독의 표정은 두 손을 치켜들고 기도 세리머니를 하던 당시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4강에서 만난 브라질은 '호화군단'이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베베토, 둥가, 조르지뉴가 주전으로 뛰고 있었다. 브라질전 선제골은 이어진 2실점으로 인해 결승골이 되지 못했지만 한국과 김종부가 세계 무대에 심은 인상은 강렬했다. 김 감독은 "후반전에 (신)연호와 2대1 패스로 골키퍼와 단독으로 맞섰던 찬스가 가장 아쉽다. 발이 엇갈리면서 골로 연결되지 못했는데, 그 골이 들어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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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에는 감독 혼자 이것저것 다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팀, 선수들이 원하는 부분도 배우게 됐다"고 웃은 김 감독은 "후진 양성이라는 목표 속에 시작한 지도자 생활이지만 어느 정도 시점이 되니 힘이 들더라. 매년 팀 성적-선수 진학이라는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창 좋을 나이에 프로에서 피우지 못한 꽃을 다시 피워보고 싶다는 꿈도 꿨지만 '학원 축구 지도자'라는 선입견을 깨기가 쉽진 않았다"며 "프로처럼 화려하고 새로운 모습은 아닐지언정 진정한 승부의 세계를 배울 수 있는 무대가 학원축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남에서 코칭-지원 스태프, 선수들의 큰 도움을 받았고 겨우내 노력한 부분이 시즌 초반 좋은 모습으로 드러나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아마추어 지도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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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4강 신화'는 1983년 이후 19년 동안 한국 축구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월드컵의 물꼬를 텄지만 여전히 변방으로 여겨지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새 지평이 열렸음에도 멕시코의 환희는 여전히 추억으로 되새겨지고 있다. 유럽-남미의 강호들을 떨게 만든 '붉은악마'의 투혼은 너무도 달콤한 향수다. 오는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기니와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는 신태용호의 목표도 '멕시코 4강 신화'를 넘는 것이다. 24년 전 멕시코 환희를 썼던 김 감독의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김 감독은 "우리 때만 해도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저 '저 팀에 잘하는 선수가 있다'는 정도였는데, 그 선수가 어느 정도 잘 하는 줄도 몰랐다"고 웃었다. 그는 "이제 유스 선수들이 유럽 명문팀에 입단할 정도로 한국 축구는 진일보 했다. 우리 때와는 분명 다르다"며 "자신감만 갖는다면 4강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소위 '죽음의 조'로 불리는 신태용호의 조별리그 맞상대들을 두고도 "3팀 모두 8강이나 4강서 만나야 할 팀이다. 대부분 토너먼트에 컨디션을 맞춘 팀들이라 조별리그서 만난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우리 때는 소위 '쫄아 있는 상태'에서 그저 열심히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감만 있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며 "그저 열심히만 하려고 하면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다. 냉철하게 주변을 볼 줄 아는 시야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창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