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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 동안 "감독을 경질하라"는 축구팬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3일 대한축구협회가 기술위원회를 통해 내린 결정은 '슈틸리케 유임'이었다.
앞서 다수가 "슈틸리케 감독으로는 더이상 안 된다"고 비난을 가했을 때 그 목소리에 찬물을 끼얹은 쪽은 선수였다. 바로 슈틸리케호의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이었다. 기성용은 슈틸리케 감독의 '페르소나(분신)'라고 불리는 핵심 선수다. 그는 지난달 28일 시리아전(1대0 승)에서 어렵게 승리한 후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발언의 골자는 "감독님은 열심히 준비했고,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잘 못한 것이다." 또 지금 상황에선 어떤 감독이 와도 어렵다는 얘기도 했다. 이 발언에 같은 유럽파이자 태극호의 핵심 선수인 손흥민(토트넘)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이 공감했다.
결과적으로 핵심 선수들의 '자아비판' 식 발언은 위기의 슈틸리케 감독을 보호한 방패막이 돼 버렸다. 프로팀 감독까지 지낸 한 축구인은 "이번 유임 결정이 향후 어떤 식으로 한국축구사에 남을 지 모르지만 선수들의 발언이 축구협회 수뇌부 판단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했기 때문에 결정권자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몽규 회장이 이용수 위원장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사실상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 쪽으로 기울었다. 정 회장은 지난달 중국전 패배 후 언론 인터뷰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논할 때가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 그 의지는 시리아전 승리 후에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이기도 하다. 기업가다. 실리를 최우선으로 따진다.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위원장을 지금 시점에서 버렸을 경우 한국 축구와 축구협회가 더 큰 혼란을 맞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1차적으로 이용수 위원장의 사표를 수용하지 않았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또 현재 아시아 최종예선 A조 2위로 본선 직행 가능성의 긍정적인 면을 봤다. 중국전과 시리아전에서 A대표팀이 축구팬들의 바람에 미치지 못했지만 6월 카타르전부터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 논란은 일단 일단락,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남은 3경기 결과와 내용에 따라 언제라도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는 게 맞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