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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이었다.
이 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을 자신이 데려왔고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결국 이 위원장은 사표를 제출했다. 2일 축구협회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시리아전을 마친 다음 날 이 위원장이 정 회장을 찾아가 사표를 제출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정 회장은 '슈틸리케 감독 후임에 대한 대안도 마땅치 않고 지금 위원장이 물러나는 건 무책임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사표를 반려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이 고심 끝에 사표를 냈다는 사실은 사실상 슈틸리케 감독 경질을 염두에 둔 결단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의 사표 반려는 또 다른 반전이다. 이 위원장이 정 회장에게 다시 한 번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운명을 같이 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도 유임 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직선적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경질과 대안 마련까지 기술위원장이 맡아야 할 몫이라는 반대 해석도 여전히 유효하다.
먼저 코치들로부터 신임을 얻어야 한다. 지난 2년6개월간 슈틸리케호에서 활동하던 코치들이 세 명이나 바뀌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불 장군' 수준이었다. 차두리 전력분석관과 설기현 코치가 합류한 뒤 코칭스태프간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전까진 자신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국내 코치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소통 부재는 강팀을 만난 최종예선부터 이어져온 문제였다.
선수들과의 신뢰도 다시 쌓아야 한다. 새 얼굴을 중용해 기존 선수들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일견 감독의 묘수일 수 있다. 그러나 전제는 새 얼굴이 기존 선수들보다 나은 기량 또는 컨디션을 갖추고 있을 때다. 그래야 명분이 선다. 그라운드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선수들이다. 선수들끼리 인정하지 않는 선수를 발탁한건 명백히 감독의 책임이다.
특히 외부의 조언도 귀 기울여야 한다. 언론과 팬들의 비판과 비난은 언제나 결과론적이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저조한 경기력으로 본선에 진출해도 희망이 없다는 사실. 비난의 주된 이유다. 무엇보다 협회 내 축구인 출신 수뇌부의 조언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기술위원장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외국인 감독의 비애이긴 하지만 선수들의 성향과 플레이 스타일을 좀 더 잘 아는 관계자의 조언이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는 꿀팁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기술위원회를 거친 최종 결론이 만에 하나 유임일지언정 여전히 민심은 그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뼈를 깎는 변화만이 반전의 희망을 살릴 수 있다. 그게 슈틸리케와 한국 축구가 모두 사는 길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