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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의 평양 원정이다.
평양 땅을 밟을 윤덕여호는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해야 한다. 지난 2011년 일본 대표팀이 그랬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 최강'이라는 타이틀이 낯설지 않았다. 그해 카타르아시안컵 정상에 오른데 이어 8월 친선전에서 조광래호를 3대0으로 완파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던 호시절이었다. 바로 그 무렵인 11월 15일, 맞닥뜨린 상대는 북한.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전이었다. 안방에서 북한을 1대0으로 눌렀던 일본이지만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북한은 제3국 개최가 아닌 평양 홈경기로 일본을 맞이했다. 일본 축구가 1989년 이후 22년 만에 북한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일본 대표팀의 2박3일 평양 원정은 '공포'였다. 중국을 경유해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한 일본 선수들은 무려 4시간 동안 입국심사를 받았다. '보안'을 이유로 휴대폰을 압수한 것은 물론, 일부 선수들은 껌까지 빼앗겼다. 숙소로 배정된 고려호텔도 마찬가지였다. 층마다 3~4명의 보안 요원들이 배치됐다. 선수마다 1인 1실이 배정됐으나 자기 방에서 제대로 자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기요타케 히로시(세비야)는 "방 안의 벽 뒤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동료 방에서 함께 잤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경기 당일 일본은 2만9000여명의 관중이 빼곡히 자리를 채운 양각도경기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엄청난 야유에 국가 연주가 묻혔고, 기세가 오른 북한 선수들의 플레이는 생갭다 더 강했다. 일본은 0대1로 패하면서 무패 행진을 마감하고 쓸쓸한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윤덕여호가 일본과 같은 홀대를 받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여자 축구는 국제대회 마다 한국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였다. 매 경기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정서가 깔려 있었다. 홈 이점까지 안고 치르는 이번 경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예선 유치 신청을 한 것도 이런 자신감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경기 승리를 통해 우위를 과시한다는 목표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윤덕여호는 '두려움' 속에 묻힐까. 그라운드 안은 또 다른 세상이다. 남북 여자축구는 매번 명승부를 펼쳐왔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명승부를 펼쳤고, 2016년 리우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에서도 호각세를 이뤘다. 남북통일축구 당시 맞섰던 윤 감독과 김광민 북한 여자대표팀 감독, 국제대회 마다 서로를 격려했던 남북 여자 선수들의 우정도 남다르다. '두려움'이 운덕여호를 막아서지만 않는다면 새로운 명승부에 대한 기대를 품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