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대단한 차두리, 그의 마지막 길은 눈부셨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11-02 07:07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2015 FA컵 결승전이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서울이 3-1의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선수들이 우승컵을 든 차두리에게 샴페인 세례를 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10.31/

더 이상 눈물은 없었다. 샴페인 세례에 흠뻑 젖은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최고의 순간, 그의 '축구 시계 1막'도 막을 내렸다.

차두리(35·서울)가 31일 2015년 KEB하나은행 FA컵에서 우승컵을 든 후 그라운드와 이별했다. FC서울은 K리그에서 3경기가 더 남았다. 주장 차두리는 한 달간 발바닥 통증을 참고 뛰었다. FA컵 우승으로 그는 소임을 마쳤다. 서울은 이날 인천을 3대1로 완파하고 17년 만의 FA컵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내년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 티켓도 획득했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ACL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렸다.

차두리, 그의 이름 석자는 대단했다. 마지막 길은 눈부셨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그의 시계는 2012년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분데스리가 뒤셀도르프와 계약을 해지하고 잠깐 은퇴를 했다. 학교도 다니며 독일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했다. 그러나 그는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었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 분들이 모두 똑같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꼭 한국에 가서 공을 차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한 두 분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기를 했다. 그래서 한국서 팬들 앞에서 경기를 한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2013년 3월 27일 차두리가 FC서울의 품에 안겼고, 지난 연말 2년 계약이 끝이 났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었다.

두 번의 아픔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서울은 2013년 ACL 결승에 올랐다. 아시아 정상이 눈앞이었다. 하지만 광저우 헝다(중국)에 원정 다득점(홈 2대2 무, 원정 1대1 무)에서 밀리며 정상을 밟지 못했다. 그는 광저우의 그라운드에서 아픈 눈물을 쏟아냈다.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지난해 FA컵 결승전도 악몽이었다. 상대가 성남이라,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120분 연장혈투 끝에 득점없이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2-4로 무릎을 꿇었다. 눈물도 말랐다. 그는 성남의 우승 세리머니를 그라운드에서 허망하게 지켜봤다.

1년 재계약을 선택했다. 그리고 더 이상 계약 연장은 없다고 다짐했다. 차두리는 2015년 10월의 마지막 날, 꿈에 그리던 처음이자 마지막 국내무대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한-일월드컵 직후 독일 분데스리가 프로에 데뷔한 그는 2010년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이적한 후 두 차례 챔피언을 경험했다. 2010~2011시즌 리그컵과 2011~2012시즌 정규리그였다. 서울에서 FA컵 우승을 추가하며 프로 데뷔 후 3번째 챔피언에 우뚝섰다.

정상에서 작별을 선택했다. "남은 K리그 클래식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오늘 경기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만약 FA컵 우승을 하지 못했다면 K리그 마지막까지 주장으로서 소임을 다해야 하겠지만 지난 1개월간 발바닥 통증이 낫지 않는 바람에 계속 약을 먹고 참으면서 훈련하고 출전했다. 이제 뜻깊은 결과를 얻었으니 개인적으로 몸을 생각해서라도 현역 마지막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만감이 교차했다.

차두리는 후회없이 그라운드와 싸웠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강력한 오버래핑으로 단 번에 분위기를 바꿨다.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는 팀이 위기에 빠진 5월 주장에 선임되며 선수단을 하나로 만들었다. 차두리는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으로 복귀하고 나서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실패했는데 마지막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며 기뻐한 후 "오늘 비록 우리가 빛을 보고 응원을 받았지만 이날이 있기까지 함께 한 선수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 선수들이 있었기에 결승이 있었고, 다같이 우승컵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2015 FA컵 결승전이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서울이 3-1의 승리를 거두며 우승컵을 차지한 가운데 차두리가 아버지 차범근에게 우승 메달을 걸어주며 포옹을 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10.31/
그의 축구인생은 '차범근 아들'에서 시작됐다. '차범근 아들'은 지워졌다. 차두리로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차두리는 이날 시상식에서 아버지 차범근 전 수원 감독에게 우승 메달을 선물했다. 차두리는 "아버지께 메달을 걸어드렸더니 당신께서도 감독할 때 우승해 봤다고 하시더라. 잘 난 아버지를 둬서 그런가 보다"며 "다른 아버지는 감동하고 신기해 할텐데 저희 아버지는 다 해봤기 때문에 크게 감동을 안 하시는 듯하다. 그래도 속으로는 아들이 우승했으니 기쁨이 크실 것이다. 메달을 잘 간직할 것이라 믿는다"고 웃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해피엔딩이었다. 차두리는 "나중에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재회를 기약했다. 그라운드를 떠난 차두리, 그의 마지막은 행복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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