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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두두다다'로 돌아온 아스널, 이번이 기회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5-11-02 07:07


ⓒAFPBBNews = News1

"나의 꿈은 수많은 타이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가 그라운드 위에서 단 5분이라도 지속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축구계의 대표적인 이상주의자다. 이기는 경기가 아닌 아름다운 경기를 추구했다. 2008~2009시즌이 대표적이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알렉산더 흘렙, 토마스 로치스키, 마티유 플라미니가 중심이 된 아스널의 패싱게임은 전성기 시절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으로 축구에서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을 말함) 못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아스널은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부상과 체력 저하가 겹치며 3위에 머물렀다. 2003~2004시즌 무패 우승 이후 한 차례도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벵거 감독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벵거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아직 감독 자리에 있다." 조제 무리뉴 첼시 감독의 말에 아스널팬들은 속만 끓일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벵거 감독의 계속된 우승 실패를 조롱하던 무리뉴 감독이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올 시즌, 아스널은 둘도 없는 우승 기회를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작은 철학의 포기였다. 정확하게는 아름다움 보다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패싱게임의 기본은 '패스 앤 무브'다. 하지만 벵거식 패싱게임은 잘게 썰어가는 바르셀로나식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다. 시계추를 아스널의 전성시대인 2003~2004시즌으로 돌려보자. 티에리 앙리, 프레디 융베리와 같이 스피드가 빠른 선수와 데니스 베르캄프, 로베르 피레처럼 생각이 빠른 선수가 어우러진 아스널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을 펼쳤다. 패트릭 비에이라, 질베르투 시우바 등이 볼을 뺏으면 곧바로 역습에 나섰다. 벵거 감독이 만든 역습형 패싱게임은 말달리는 소리를 형상화한 '두두다다'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아스널의 축구는 바르셀로나식에 가까웠다. 지나치게 볼 점유를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연계에 최적화됐지만, 스피드가 느린 올리비에 지루가 최전방에 포진된 것이 이를 상징한다.

올 시즌은 아스널은 가장 좋았던, 가장 잘했던 시절의 축구로 돌아갔다. 아스널이 올 시즌 거둔 가장 인상적인 승리였던 바이에른 뮌헨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경기(2대0 아스널 승)가 좋은 예다. 이날 아스널은 바이에른 뮌헨의 막강 허리진에 밀려 점유율을 내줬다. 바이에른 뮌헨이 무려 799번의 패스를 한 반면, 아스널은 299번의 패스에 그쳤다. 하지만 찬스를 만든 횟수는 비슷했다.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실수가 겹쳤지만, 아스널의 빠른 역습을 앞세운 경기력은 분명 승리할 자격이 있었다. 3대0 완승을 거둔 1일 스완지시티전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점유율은 스완지시티에 내줬지만, 아스널은 득점기회를 만드는데 더 집중했다. 시오 월컷, 알렉시스 산체스가 앙리, 융베리의 역할을, 메주트 외질과 애런 램지가 베르캄프, 피레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아스널은 그 어느때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축구를 펼치고 있다. 특히 큰 돈을 들여 영입한 산체스와 외질은 아스널에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클래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산왕' 산체스는 확실한 에이스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외질은 벵거 감독이 원했던 '넘버10'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선으로 내려간 산티 카졸라의 탁월한 경기운영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스널의 달라진 축구의 중심은 바로 수비다. 지난 몇년간 아스널은 고질적인 수비불안에 시달렸다. 올 시즌은 벵거 감독이 차근차근 준비한 수비진의 결정판으로 보인다. 벵거 감독은 빌드업이 뛰어난 센터백과 빠른 윙백, 그리고 볼탈취에 능한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호한다. 벵거 감독은 이 조합을 찾기 위해 많은 실험을 거듭했지만,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 올 시즌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빌드업은 인정받았지만 안정감이 떨어졌던 로랑 코시엘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의 센터백으로 성장했고, 스피드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오른쪽 윙백 헥토르 베예린은 왼쪽 윙백 나초 몬레알과 함께 최강의 윙백을 구축했고, 의심의 시선을 받던 프란시스 코클랭은 볼뺏기에 관한한 최고로 자리매김했다. 아스널은 11라운드가 지난 EPL 최저 실점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EPL 최고의 골키퍼 페테르 체흐가 버티고 있다. 수비가 안정감을 더하자 역습 축구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갈길은 멀다. 아스널은 잘나가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부상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월컷, 알렉스 옥슬레이드 챔벌레인, 미켈 아르테타, 대니 웰벡, 잭 윌셔 등이 차례로 쓰러지며 어느덧 EPL에서 가장 부상자가 많은 구단이 됐다. 아스널은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지난 10년간 가장 부상자가 많은 팀이었다. 벵거 감독은 최근 피지컬 코치를 교체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공포의 셔틀런'을 도입하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세계적인 체력 코치인 레이몽드 베르헤이옌은 지나치게 체력 훈련을 강조하는 벵거 감독의 훈련법을 비판한 바 있다. EPL의 우승은 '박싱데이 일정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빡빡한 12월을 넘기 위해서는 두터운 선수층이 필수다. 아스널 입장에서는 부상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벵거 감독은 최전방과 수비형 미드필더 쪽에 보강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물론 벵거 감독의 영입은 오피셜이 뜰때까지는 믿을 수 없지만 말이다.

올 시즌 EPL은 무언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첼시가 완전히 무너졌고, 맨유는 여전히 불안정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맨시티도 부상자가 늘어나며 시즌 초반과 같은 강력함을 잃었다. 리버풀, 토트넘은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으려는 아스널, 지금이 바로 기회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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