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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모든 것을 다 건 최용수 감독 그리고 아버지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11-02 07:07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2015 FA컵 결승전이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서울이 3-1의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최용수 감독이 우승컵을 들어올리자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10.31/

감독의 삶은 고독하다.

운명 또한 거칠다. 승부의 세계에선 사방이 적이다. 시즌은 롤러코스터다. 결과에 따라 팬들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매 경기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다. 정신적인 고통과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전을 닷새 앞둔 26일이었다. 전날 전북과 K리그 경기를 치른 선수단은 휴식일이었다. 최용수 서울 감독(44)은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지리산 자락으로 향했다.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곳이다. 최 감독은 삼형제의 둘째다.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아버지는 힘든 운동을 하는 둘째 아들을 유난히 아꼈다. 과일가게를 하며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부정은 특별했다. 초중고 시절 아들이 경기를 앞두면 늘 장남과 막내 몰래 고기를 사줬다. 연세대 재학시절 부산으로 전지훈련을 갈 때면 늘 수십통의 수박을 선수단에 안겼다.

'영원한 그림자'였던 아버지는 1994년 4월 6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 감독이 프로에 데뷔한 그 해였다. 전날 아들의 골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아버지였다. 선영의 벌초를 떠난 것이 최후였다. 마지막 잔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기 톱날이 허벅지를 스쳤다. 과다출혈로 숨을 거뒀다.

최 감독은 힘들 때마다 아버지를 찾는다.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아버지가 더 생각났다. 그리고 기도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해 달라고….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그는 운명을 "하늘에 맡겼다"고 했다. 간절한 기도대로 하늘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아들을 지켰다. 그라운드의 주연은 최 감독이었다. FA컵 정상에 우뚝섰다. 2011년 4월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후 두 번째 우승이다. 2012년 K리그에 이어 올해 FA컵에서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렸다. 1998년 이후 17년 만의 FA컵 우승이었다.

최 감독은 지난해 11월 23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눈물도 흘릴 수 없을 만큼 고통을 겪었다. 16년 만의 FA컵 결승 진출에 들떴다. 상대는 성남이었다. 대부분이 서울의 우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120분 연장 ?투에서 끝내 골은 터지지 않았고, 승부차기에서 성남이 웃었다. 2-4, 그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승부의 세계,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 최 감독은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자책했다. 소심한 전술, 판단 미스…, FA컵 결승전의 후회다.


단판 승부인 FA컵은 패하면 끝이다. 다행히 2년 연속 FA컵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다시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처럼 더 이상 구름 위를 걷지 않았다.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 감독직도 내려놓을 생각도 했다. 두 번의 실패는 자신에게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건 FA컵 결승전이었다. 침착했다. 전반 33분 다카하기의 선제골로 기선을 잡았지만 후반 26분 인천 이효균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분위기가 잠깐 인천에 넘어갔다. 최 감독도 지난해의 악몽이 떠올랐다. 인내했다. 연장전을 대비해 교체카드 한 장만 사용했다. 선수들을 믿었다. 기다리던 결승골이 후반 42분 아드리아노의 발끝에서 터졌다. 후반 46분에는 몰리나의 쐐기골까지 나왔다. 3대1, 완벽한 반전이었다. 지난해의 한이 허공으로 훌훌 날아갔다. 올 시즌 여름이적시장에서 영입한 다카하기와 아드리아노는 오랫동안 공을 들인 인물이다. 올해를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몰리나는 늘 교감을 갖고 있다. 선수들도 감독의 간절함에 화답했다.

최 감독은 5년차 사령탑이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 리그 초반 '슬로 스타트'로 팬들로부터 매도 많이 맞지만 마지막은 늘 웃는다. 4년 연속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은 최 감독이 빚은 작품이다. 그는 다시 한번 대기록도 작성했다. 현역 시절 신인상(1994년), 최우수 선수상(MVP·2000년)을 수상한 그는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는 K리그에 이어 아시아축구연맹(AFC)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FA컵 우승컵도 품에 안으며 40대 중반에 최고의 감독 대열에 올랐다.

최 감독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012년 K리그 우승 근간은 4-3-3 시스템이었다. 2013년에는 '무공해(무조건 공격) 축구'로 꽃을 피웠다. 4-4-2, 4-2-3-1 시스템으로 변화무쌍한 전술을 펼쳤다. 지난해에는 또 다른 변신을 했다. 스리백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수비축구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새로운 축구를 펼쳐보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그라운드에 투영됐다. 올 시즌 포백과 스리백을 오간 그는 후반기들어 3-5-2 시스템에 안착하며 다시 한번 정상에 섰다.

지난 7월 중국 프로팀인 장쑤가 계약기간 2년 6개월, 연봉 총액 50억원에 영입 제의를 했다. 최 감독도 흔들렸다. 마지막 결정은 의리였다. 그는 FA컵에서 우승한 후 "올 시즌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도자 최용수는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으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우승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감독의 숙명이다. 그래도 최 감독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사령탑이다. 그의 꿈은 이제 아시아 정상을 향하고 있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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