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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우승이라는 단어는 어느덧 사치가 됐다. 슈틸리케호는 아시안컵에서 2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다. 14일(이하 한국시각) 브리즈번으로 이동한 태극전사들은 17일 오후 6시 호주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A조 1위가 결정된다.
물론 불씨는 살아있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반전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청용(볼턴)은 부상으로 잃었지만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츠) 등이 돌아오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한 중간 평가는 필요한 시점이다.
원톱의 부재, 분발이 절실하다
이동국(전북)과 김신욱(울산)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박주영(알 샤밥)은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끝내 발탁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조영철(카타르SC) 이근호(엘 자이시) 이정협(상주)을 선택했다. 역대 가장 무게감이 떨어지는 진용이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들을 믿었다.
오만과 쿠웨이트전에서 3명이 모두 가동됐다. 오만전에는 조영철에 이어 이정협, 쿠웨이트전에선 이근호에 이어 이정협이 원톱에 포진했다. 조영철과 이근호는 교체 카드의 변화에 따라 측면에도 위치했다. 조영철이 오만전에서 한 골을 터트린 것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현재까지는 실패한 실험이다. 최전방의 움직임은 낯설었다. 2선과의 호흡은 물론 경기력도 수준 이하였다. 슈팅과 패스를 할 타이밍도 구분하지 못했다. 원톱, 제로톱 등 전술적인 말만 무성했을 뿐이다. 상대 수비수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원톱의 분발이 절실하다.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최전방이 살아나야 한다.
우왕좌왕 중앙수비, 철학이 없다
단기 대회의 경우 가장 먼저 중심을 잡아야 하는 포지션이 중앙수비다. 슈틸리케 감독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고 있는 형국이다. 주전 중앙수비를 꼽기가 난감하다.
2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한 장현수(광저우 부리)는 지난해 평가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수비를 넘나들었다. 그는 오만전에서는 김주영(상하이 둥야), 쿠웨이트전에선 김영권(광정우 헝다)을 파트너로 맞았다. 곽태휘(알 힐랄)는 훈련 중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두 경기 모두 부실했다. 중앙수비수는 상대의 전력을 떠나 한 순간도 집중력이 흐트러져서는 안된다. 한 명이라도 삐걱거리면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쿠웨이트전의 경우 장현수가 흔들리면서 여러차례 위기를 노출했다.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우왕좌왕하는 중앙수비가 자리를 잡아야 중원과 공격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이 주목된다. 누가 됐든 주전 중앙수비 조합을 가동해야 할 시점이다.
실종된 팀정신을 깨워야 한다
10일 오만, 13일 쿠웨이트전의 베스트 11, 무려 7명이나 바뀌었다. 과연 사흘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오만전에서 쓰러진 이청용과 김창수(가시와)의 부상은 불가피했다. 그 외에는 '줄감기'라고 했다. 그러나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부분이다. 전체 선수단 관리는 물론 선수 개개인도 컨디션 조절에 허점을 노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쿠웨이트전 직후 "이유가 없고 그냥 그런 불가피한 환경이 왔다. 18명만 오늘 경기에 왔는데 진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선수는 14명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팀 정신이다. 해법은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 스스로 탈출구를 마련해야 한다. 정신력을 다시 깨워야 한다. 주장 기성용은 14일 "우리는 뭐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점점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며 "우리는 8강에 진출했다. 중요한 경기가 더 남았다. 우리 스스로 팀 분위기를 다운시킬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부활의 첫 단추는 분위기다. 분위기 쇄신을 통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처방전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