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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의 귀환,'의리'아닌 '실력'을 증명하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10-20 09:10


◇박주영이 알힐랄과의 2014~2015시즌 사우디 프로리그 7라운드를 앞두고 알샤밥 팀 훈련 도중 동료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캡쳐=알샤밥 페이스북


브라질월드컵은 시련이자 보약이었다. 브라질월드컵 에이스들이 각자의 그라운드에서 오롯한 실력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에이스로 인정받았고, 어린 나이에 해외진출의 꿈을 이뤘고,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거침없이 달려온 이들에게 브라질월드컵은 첫 시련이었다. 대한민국 축구의 중심에서 팬들의 뜨거운 환호속에 승승장구해온 이들이 겪은 첫 좌절이자 아픔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감과 '긍정의 힘'으로 무장했지만,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수많은 논란속에 입을 다물었다. 월드컵 직후 해외파 선수들은 칩거했다. 국내에서 재활과 치료에 전념하다, 하나둘씩 조용히 출국했다. 그러나 축구를 향한 마음가짐만큼은 그 어느때보다 결연했다. 지고는 못사는 이들에게 시련은 보약이 됐다. 대중의 평가와 무관하게 자신의 축구를 하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안고 각자의 그라운드로 떠났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슈틸리케호 1기'의 주장완장을 찼다. 올시즌 복귀한 소속팀 스완지시티에서도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신태용 코치체제에서 치러진 9월 우루과이-베네수엘라와의 A매치 2연전에서 기성용은 '키(Key)'였다. 대표팀 전술의 핵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뽐냈다. 수비형미드필더, 중앙수비수 ,최전방 공격수까지 멀티포지션을 완벽하게 수행해내며, 패스마스터, 중원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다. 파라과이, 코스타리카와의 10월 A매치 2연전에서도 '캡틴'기성용은 공격의 시작점이자 수비의 마지막 보루였다.

'의리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박주영 역시 부활을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리그 알샤밥 유니폼을 입자마자, 18일 알힐랄과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했다.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결승골로 1대0, 팀의 짜릿한 승리를 이끌었다. 박주영의 골은 지난 3월6일 그리스와의 원정평가전 이후 7개월만이다. 클럽팀에서 득점포를 가동한 것은 지난해 3월16일 셀타비고-데포르티보전 이후 무려 1년7개월만이다.

19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전에 나선 윤석영의 활약 역시 인상적이었다. 무려 1년8개월만에 프리미어리거의 꿈을 이뤘다. 지난해 2월 전남에서 퀸즈파크레인저스(QPR)로 이적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적 직후 기회를 잡지 못했고, 기회를 보장받은 시점에 부상했다.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됐고, 임대 등을 통해 기회를 모색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왼발을 주로 쓰는 윤석영에게 오른발목 부상은 고질이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런던올림픽, 브라질월드컵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QPR행 이후 치열한 주전경쟁속에, 크고 작은 모든 기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오른발목 연골이 거의 닳아없어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과정에서 부상은 심화됐다.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알제리전 직전 훈련중 발목을 다쳤지만, 팀을 위해 꾹 참고 달렸다.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QPR 프리시즌 준비를 하던 중, 또다시 발목을 다치며 리그 데뷔가 늦춰졌다. 그러나 윤석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즐겁게 운동하기'로 결심했다. 재활에 전념하는 한편, 2군경기, 23세 이하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며 경기감각을 예열했다. 8라운드 리버풀전을 앞두고 해리 레드냅 감독은 윤석영을 면담했다. 리버풀전 선발출전을 시사했다. 지난 5월3일 챔피언십 반슬리전(3대2 승)에서 선발출전해 데뷔골을 신고한 이후 5개월만의 선발이었다. 윤석영은 잘 준비돼 있었다. 준비한 것을 리버풀전에서 보여줬다. 리버풀 오른쪽 날개 라힘 스털링과 쉴새없이 충돌했지만 밀리지 않았다. 공격과 수비에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홈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브라질월드컵 에이스들의 귀환은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슈틸리케호'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10월 A매치 2연전 엔트리를 발표 당시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입장은 단호했다. "선수는 경기에 뛰는 게 중요하다. 팀을 찾고 감각도 끌어 올린 뒤에야 (A대표팀) 선발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나는 유럽 일선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해외에 진출해 경기에 뛰지 못한 채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을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

'뛰는 선수'를 요건 삼은 슈틸리케 감독이 살펴봐야할 선수가 늘었다. 한국 축구의 위기속에 젊은 에이스들은 단단한 자존심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들을 지켜온 건 '의리'가 아니라 '실력'이었다. '실력'은 도망가지 않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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