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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포항)과 서정원(수원). 현역시절 한국축구를 대표한 이름이다.
황새의 고민, 날쌘돌이의 승부수
황 감독은 유독 긴장한 표정이었다. "오늘 결과를 보고 다음 스텝으로 가야겠다. 고민은 오늘까지다." 체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3월 총력전을 외치면서 선발 라인업 변화를 최소화 했다. 그 결과 2년 연속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맛봤던 ACL에서 무패(1승2무)로 순항했으나, 리그에선 2연패로 추락했다. 황 감독은 "주중 전북전 뿐만 아니라 산둥루넝(중국)과의 원정 경기도 앞두고 있다. (선수단 운영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까진 그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 베스트11에는 지난 5경기에 출전한 선수 전원이 포진했다.
변수가 춤춘 그라운드, 변화 또 변화
서 감독의 승부수가 전반전을 지배했다. 포항은 길을 잃었다. 사실상 스토퍼 역할을 한 오장은은 철옹성이었다. 포항의 패스 길목을 죄다 끊었다. 김두현은 중원사령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활동반경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발을 떠난 패스는 포항 포백 라인의 틈을 찔러댔다. 결국 전반 4분 만에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수원은 일방적인 흐름으로 경기를 주도했다. 짧은 논스톱 패스 뿐만 아니라 방향전환, 순간침투 등 모든 면에서 포항을 압도했다. 올 시즌 최고의 경기력에 서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포항은 변수에 울었다. 전반 17분 수원 골키퍼 정성룡과 충돌한 조찬호가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교체됐다. 인사이드 돌파 능력이 좋은 조찬호의 공백은 제로톱의 균열을 의미했다. 문창진이 자리를 채웠으나, 빛나지 못했다.
전반전을 지켜보던 황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변화를 택했다. 이명주 김재성을 활용한 킬패스로 수원의 아킬레스건인 수비 뒷공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거리를 뒀던 김두현과의 직접 맞대결도 강화했다. 서 감독이 맞받아쳤다. 후반 16분 김두현을 빼고 조지훈을 투입하며 색깔을 바꾸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수원을 울렸다. 투입 직후 위험한 태클로 경고를 받은 조지훈이 후반 18분 문전 돌파하던 고무열을 밀어 넘어뜨려 또 경고를 받고 퇴장 당했다. 서 감독의 승부수가 2분 만에 허공으로 날아갔다. 흐름은 급격히 포항 쪽으로 넘어갔다. 유창현 이진석을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한 포항은 결국 2대1 역전승으로 승부를 마무리 지었다.
징크스의 명암
서 감독은 퇴장 변수를 곱씹었다. "전반전은 준비대로 잘 이뤄졌다. 하지만 후반전 퇴장으로 경기 양상이 뒤바뀌었다."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던 김두현의 이른 교체가 패착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서 감독은 "후반전에서 김두현이 처지는 모습이었다. 상대가 그 공간을 공략하면서 수비라인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교체 선수가 잇달아 경고 2장을 받았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2실점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면서 "포항과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늘도 그랬다. 다음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힘겹게 리그 첫 승에 도달한 황 감독의 표정은 담담했다. "포기하지 않은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그는 "수원전을 앞두고 지난 부산전 녹화영상을 계속 돌려보고 미팅을 했다. 수원의 앞선 경기는 거의 보지 않다시피 했다. 우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집중했다"고 승리 요인을 밝혔다. 이날 승리로 포항의 수원전 무패 기록은 8경기(7승1무)로 늘어났다. 황 감독은 "징크스는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라면서도 "수원을 만날 때마다 선수들의 남다른 자신감을 느낀다. 이런 기분좋은 자신감이 당분간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포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