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성남 탄천운동장에서 펼쳐진 K-리그 클래식 6라운드에서 성남(2대1 승)이 전북을 이겼다. 그냥 승리가 아니다. 올 시즌 마수걸이 승리다. 안익수 감독이 성남 지휘봉을 잡은 후 첫 승리다. 무엇보다 310일만의 홈 첫승이다. 지난해 6월 9일 경남전(2대0 승) 이후 10개월 넘게 홈팬들에게 승리를 안기지 못했다. 침묵했던 '이적생' 김동섭이 1골1도움을 기록하며 해결사로 우뚝 섰다. '모스크바 특급' 김인성은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기는 법을 잊었던 성남이 이겼다. 그것도 리그 최강 '닥공' 전북을 상대로 이겼다.
성남은 지난 5경기에서 3득점 8실점했다. 경기 직전 만난 안 감독에게 원톱 김동섭의 부진 이유를 물었다. 동계훈련 기간 가장 기대되는 선수로 망설임없이 김동섭을 꼽았었다. 연습경기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다. 개막후 전경기에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했다. "다 내가 못가르친 탓"이라며 웃었다. "늘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돌파구를 마련해주지 못하는 것같다. 한번 터지면 봇물 터지듯 터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며 제자를 옹호했다.
경기중 그라운드: 김동섭의 부활, 김인성의 도발
감독의 한결같은 믿음에 김동섭이 응답했다. 전반 14분 '치타' 김태환이 하프라인부터 폭풍질주를 시작했다. 특유의 스피드가 빛났다. 동갑내기 김동섭과는 20세 이하 대표팀, 올림픽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하며 눈빛을 맞춰온 절친이다. 페널티박스 앞에서 수비를 따돌리며 뒤로 슬쩍 흘린 볼을 김동섭이 놓치지 않았다. 낮게 깔리는 침착한 슈팅으로 오른쪽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35분 역습상황, 또다시 김동섭의 발끝에서 추가골이 시작됐다. 엔드라인 앞에서 쇄도하는 김인성을 향해 킬패스를 찔러넣었다. '강릉시청-CSKA모스크바-성남일화'의 독특한 이력을 지닌 '신데렐라' 김인성의 도발이 시작됐다. 하프라인에서 김동섭의 움직임을 보고 50m 이상을 빛의 속도로 주파했다. "죽기살기로 뛰었다. 볼이 내게 올 거라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클래식 데뷔골이자 시즌 첫승을 자축하는 쐐기포가 터졌다.
후반 경기는 더욱 격렬해졌다. 성남식 질식수비는 견고했다. 수비라인을 위로 끌어올렸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한윤이 부지런히 포백라인과 미드필더 지역을 오갔다. 공격수 김동섭 제파로프까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포백, 파이브백, 식스백까지 일사불란한 수비로 전북을 괴롭혔다. 26분 전북 풀백 박원재가 볼경합중 박진포를 발로 걷어차며 레드카드를 받아들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적 열세는 결정적이었다. 전북의 포백라인이 와해되며 위기를 맞았다. 결국 전북은 후반 44분 에닝요의 만회골에 만족해야 했다.
경기후 라커룸:310일만의 승리, 눈물이 핑
성남 탄천운동장에 10개월만에 처음으로 승리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성남 선수단이 관중석을 돌며 고개를 숙였다. 성남 팬들이 "김동섭!" "김인성!"의 이름을 뜨겁게 '콜링'했다. 310일만의 달콤한 승리를 만끽했다. 라커룸을 향해 들어가는 김동섭을 향해 꼬마 팬들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일일이 팔목에 사인을 해주며 활짝 웃었다. 주장 박진포는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깊었다. 지난해 악몽같은 부진 후 격변기를 겪어냈다. 김성준 이창훈 이현호 전성찬 등과 지난해부터 성남의 무승 현장에서 가슴앓이를 해왔다. 모든 것이 미안했다. "승리 후 멍하더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가슴에 졌던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다. 이적한 친구들이 작년에 못한 우리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잘해줘서 정말 고맙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웃었다.
안 감독이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과정에 충실했지만, 결과가 없어서 속상했을 텐데,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축하한다." 여느 때처럼 평온했다. 선수단은 담담하게 첫승의 기쁨을 자축했다. 요란한 함성도, 특별한 세리머니도 없었다. 이날 승리의 일등공신이 된 김동섭은 "바로 주중 서울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라며 결연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안 감독은 "'초연함을 잃지 말자' 맘속에 그말을 새기고 삽니다. 6경기 중 한경기일뿐 우리가 도취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며 들뜨는 마음을 경계했다. 그러나 흐뭇함은 숨길 수 없었다. 마이크 사이로 슬몃 흘러나오는 '아빠미소'를 보았다.
성남=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