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10대1 인터뷰]홍명보 감독 "(최)용수야. K-리그 우승팀은 말이야"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2-10-14 17:07


홍명보
사진제공=어퍼컷

대부분 첫 반응은 '당혹'이었다. 다들 '어쩌지'를 연발했다. 무게감에 압도당했다.

10대1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질문자들이 고심을 거듭한 것은 그의 이름 석자에 묻어있는 카리스마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이었다. 10대1 인터뷰가 카리스마의 화신 홍명보 감독과 마주했다.

홍 감독을 만난 곳은 서울 압구정동의 한 스튜디오였다. 자신을 후원해주고 있는 한 정장 브랜드의 겨울화보 촬영장이었다. 카메라 렌즈 앞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3시간여의 촬영을 마치고 홍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런데 이 남자, 카리스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외로 귀엽다. 순진하고 허당기질도 보였다. 후배들과 친구들의 질문에 즐거워했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에는 응징도 약속했다. 지인들의 질문과 함께한 홍명보 감독의 10대1 인터뷰. 이제부터 시작이다.


포항과 가시와 레이솔, A대표팀에서 오랜기간 한솥밥을 먹은 황선홍과 홍명보. 스포츠조선DB
-내 질문은 간단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이 좋아. 아니면 이번 올림픽 동메달이 좋아?(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 2002년 4강 기적을 함께 일군 동료이자 포항과 J-리그 가시와 레이솔에서 한솥밥을 먹었음. 황 감독은 1968년생, 홍 감독은 빠른 1969년생으로 동기다. 부산의 김창수도 같은 질문을 했다)

둘다 영광이었다. 솔직한 심정은 올림픽 동메달이 더 좋은 것 같아. 최근의 일이기도 하고. 2002년 한-일월드컵은 선수단으로 일구었고 이번에는 감독의 입장에서 낸 성과라는 차이가 있어. 이번에는 감독으로서 정신적인 압박감도 심했어. 그럴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밖에 없는데,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일구어낸 성과여서 상당히 더욱 좋았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당시의 최용수와 홍명보. 스포츠조선DB
-형님, 존경합니다. 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올림픽 동메달 신화에 버금가지는 않겠지만 이번 K-리그 우승도 훌륭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형님이 생각할 때 올 시즌 K-리그 우승팀은 어디일까요?(최용수 FC서울 감독. 얼마전 홍명보 감독은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서울이 아닌 포항을 K-리그 우승팀으로 예상한 바 있다)


그 자식. 나한테 전화했던데(웃음). K-리그 우승이 쉽지 않은 일이다. 1년 내내 선수단 관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야. 얼마전에는 상승세의 포항을 우승팀으로 지목했다. 최근 포항이 하면서 온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1~2와 3위권이 승점차가 난다. 얼마전에는 포항이 상승세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포항의 최근 1~2경기 결과가 좋지 않아서 끝까지 가봐야 할 것 같아. 너는 FC서울이라고 얘길해길 바랄텐데. 음. 흐흐흐흐(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왜 중계카메라만 비춰지면 지시하는 척하고 멋있는척 해요?(김남일. 인천)

내가 중계카메라까지 신경쓸 수 있겠니? 카메라맨이 내가 나올때 찍는 것이겠지. 경기장에서 많은 것을 보지만 중계 카메라는 못본다.

-본인은 수비수 출신이면서 김태영 코치를 영입했잖아요. 자기 자신은 천사 이미지를 가지고, 김 코치가 악역을 담당하게 한 것 아니에요? 의도적으로요.(설기현. 인천)

악역이라. 의도를 가지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아. 선수들을 의도적으로 다그친다거나 분위기를 험악하게 하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않지. 김 코치가 군기반장을 하거나 그러지 않아. 참고로 김 코치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장난이 아니야. 혹시 기현이 네가 김태영 '선수'한테 맺힌 것이 있는거 아니냐.

-전 2가지 질문이에요. 일단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에 밥산다면서요? 왜 아직도 안사요? 대체 언제 사실 거에요? 두번째는 많이 들었던 질문일 겁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다양한 길이 있었을텐데 지도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안정환 K-리그 명예 홍보팀장. 홍명보호의 골키퍼 정성룡도 첫번째와 같은 질문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밥 산다고 했는데 아직 못샀다. 이제 한국에 왔으니 사야지. 먹고 싶은걸로 골라라. 난 다 잘먹으니 너네들이 좋아하는 걸로 살께. 연락해. 두번째 질문은 참 많이 들어본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넘어갔어. 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영어였어. 2005년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보좌역이 필요했는데 당시 조건이 '영어'였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상황이었어.

-많은 선수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롤 모델(선수 혹은 지도자)이 있나요?(조광수 올림픽대표팀 통역)

선수할때는 좋아했던 선수는 많이 있었어. 그런데 감독으로서 롤 모델이라는 단어에 맞는 감독이 없는 것 같아.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지금 있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이 중요해.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감독은 아드보카트 감독이었고,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어.

-감독님 현역 시절로 기억합니다. 친구나 동료분들과는 잘 어울리시고 웃음이 많으셨는데 유독 후배들에게는 잘 웃어주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왜 그러셨어요?(송종국)

글쎄. 웃음이라(빙긋 미소를 지었다) 꼭 그렇지는 않은데 아마도 그 때 너희들이랑 내가 나이차도 있었다. 또 그때는 팀 고참에 주장이었지. 내가 조금 말수가 없기도 했고. 경기만 생각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었어. 물론 인터넷에 떠도는대로 10년마다 한번씩 웃는 사람은 아니야. 알지?(하하하라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명보 형. 저도 이제 나이가 마흔이에요. 제가 포항 처음 들어갔을 때 그 스무살 남짓한 기동이로 생각하신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제 저도 스무살 기동이가 아닌 마흔살 기동이로 생각해주실래요?(김기동. 철인 김기동은 1991년 홍명보보다 1년 일찍 포항에 입단했다. 하지만 김기동은 고졸 신인이었고 홍명보는 대학 졸업 후 포항에 입단했다. 둘의 나이차이는 3살이다)

어른 대접이 쉽지 않네. 너는 생긴것도 동안이라서. 늘 머리 속에는 스무살의 기동이밖에 없어. 이제 어른대접 해주어야하는데. 영국에 있지?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와라.

-지금까지 오면서 수많이 중요한 선택을 해야할 때가 옵니다. 그럴 때 주위의 조언을 구하시는 편인가요? 어떤 식으로 결정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결정에 후회할 때도 있었나요?(이동국 전북, 포항에서 홍명보의 20번을 물려받아 달고 뛰었다)

주위의 조언을 많이 듣는 편이야. 나보다 경험이 많거나 관여되어 있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지. 물론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여러가지 상황을 예상하고 문제점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좋은 것부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부터 생각해서 결정이 올바른지 그른지를 판단하면서 생각을 좁힌다. 나중에 결정에 대해 후회한적은 없지만 100% 완벽하지 않았다고 느낀 적은 있어. 가장 어려웠던 결정은 2002년 시즌 도중 미국에 가는 결정. 그리고 2009년 청소년(20세 이하)대표팀을 맡을 때가 힘들었어.

-감독님, 나중에 써먹으려고 하는데요 프러포즈 방법 좀 알려주세요.(박종우 부산, 올림픽대표팀)

나도 특별히 프러포즈를 잘 하지 못했어. 친구들한테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이야.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벤트를 많이 하더라. 보기에 좋은 것 같아. 할 때 와이프가 평생 잊지 못하게 해라. 그렇지 않으면 평생..(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프러포즈를 할 때는 후회는 남기지 마라. 올림픽팀의 모토도 후회를 남기지 마라였잖아. 내가 줄 수 있는 프러포즈 아이디어는 없어. 방법은 네 숙제야.


홍명보호가 4일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영국 단일팀과 8강전에서 격돌했다. 후반 부상을 당한 정성룡 골키퍼가 이범영 골키퍼로 교체되고 있다.
20120804카디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혹시 주례 서 보신적 있으신가요? 제가 결혼한다면 주례 서주세요.(이범영 부산, 올림픽대표팀)

주위 사람들이 주례를 한 번 서면 계속 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 아직 주례 설 연륜도 되지 않았다. 특히 너의 주례는 서고 싶지 않아. 특별한 이유는 없고 띨띨한(?) 너를 너의 와이프한테 책임져달라는 부탁을 하기가 어려워.(웃음)

-감독님, 제가 부진한 시기에도 항상 믿음을 보여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를 계속 올림픽팀에 뽑아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부주장 역할을 맡긴 이유도요.(오재석 강원. 올림픽대표팀)

팀에는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1~2포지션 정도는 정말 팀을 위해 희생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일단 재석이는 그 포지션에서 그동안 해왔던 선수들 가운데 가장 잘했어. 내 선택은 어렵지 않았지. 와일드카드를 넣었지만 재석이 너는 수비 어느 포지션에서도 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기도 했어. 부주장을 맡긴 것은 네가 우리팀의 역사를 알고 있는데다 리더십도 있기 때문이었어. 벤치에 앉은 선수도 다독거릴 수 있는 힘이 있었지

-하나 더 질문이 있어요. 제가 감독님 핸드폰에 넣어드린 음악은 지금도 듣고 계시나요?(역시 오재석)

(단호하게)안 들어. 좋은 노래는 많던데 핸드폰을 바꾸어버려서 다 날라가버렸지.

-저희 선수들이 봤을 땐 거의 완벽하신 분 같으세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자신의 단점이나 허점은요?(윤석영 전남)

-단점은 선수들 앞에서는 당당하지만 성격이 내성적이다라는 것일거야. 허점을 굳이 들자면 축구 이외에는 다른 것에는 치밀하거나 정확하지 않지. 다른 취미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감독님, 브라질전때 저를 내보내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 털고 가버릴 수 있었을텐데요. 정중하게 여쭈어봅니다(김기희 알 사일리아)

어떻게 보면 0-3 상황에서 네가 들어갔다면 다음 경기에서 문제거리 없이 훌훌 털고 갈수 있었을 것이야.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싫었다.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팬들이나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그 덕택에 한-일전을 앞두고 경기보다 너를 어느 시점에 넣을지를 더 고민했어. 경기 끝나고 나중에 인터넷 패러디물(투입 후 1분 이병, 2분 일병 3분 상병 4분 병장 5분 전역)을 봤는데 정말 재미있더라(웃음)

-현역 시절해 상대해 본 공격수 중 최고로 뽑을 만한 선수는?(이케다 세이고 올림픽팀 코치)

위르겐 클린스만입니다. 1994년도 미국 월드컵 때 맞붙었는데 큰체격임에도 유연하고 움직임이 좋았어요. 1998년 맞붙은 네덜란드는 공격진의 조직력이 좋았고요. 브라질의 호나우두도 잘했는데 클린스만만큼은 아니었어요. K-리그에서는 라데(당시 포항)입니다. 파워풀하면서도 골결정력은 대단했어요. 같은 팀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 건, 하성룡 기자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