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기성용의 '첫 선발 풀타임'이 남긴 것들

정안지 기자

기사입력 2012-09-24 11:42


<사진=스완지 공식 홈페이지>

QPR을 0-5로 완파했고, 웨스트햄을 3-0으로 잡았다. 이후 선덜랜드전, 애스턴 빌라전을 거친 스완지 입장에서 이번에 만난 에버튼은 객관적 전력과 상대 전적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다. 더욱이 처음으로 선발 출장한 기성용은 포지션 상 현 EPL에서 가장 '핫'한 선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펠라이니와 시종일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지배적이었고, 경기 결과 또한 스완지의 0-3 완패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에버튼전은 '스완지'라는 팀과 '기성용'이라는 개인의 능력을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첫 선발, 기성용에게 주어진 임무와 성적표는?

지난 라운드 결장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엔 4-2-3-1 시스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한 축으로 선발 출장한 기성용. 함께 짝을 이룬 데 구즈만이 조금 더 윗선에서 움직이는 동안 기성용은 중앙 수비 앞에서 에버튼의 처진 스트라이커 펠라이니와 측면의 피에나르, 미랄라스를 견제했다. 또, 공격 시엔 펠라이니의 압박을 풀어내며 전진 패스를 제공해주었다. ?

경기 초반부터 몰아친 에버튼의 기세에 다소 밀렸던 스완지는 전반전 중반부터 차츰 살아났고, 기성용이 내뿜는 패스 줄기 또한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수비 라인 사이를 가로지르는 스루 패스를 통해 앙헬 랑헬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측면 수비수를 겨냥한 롱패스도 선보였다. 전방에서 경기를 풀어나갈 임무가 미추와 데 구즈만에게 주어졌다면 후방에서의 임무는 기성용의 몫이었는데, 짧은 패스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던 스완지 스타일에 굵은 선의 패스를 가미할 수 있었던 그의 존재는 생갭다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

그 존재감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EPL 여느 팀들이 보통 한 경기에서 3-400개의 패스를 시도하는 데 반해, 스완지는 500개를 웃도는 패스를 기록할 정도로 패싱 플레이의 성향이 강했다. 이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 진영에서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팀 전체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는데, 그 속에서 기성용은 팀 평균인 81%를 뛰어넘는 90% 이상의 패스 성공률로 본인의 입지를 다져 나갔다.

두 번의 슈팅, 기성용이 남긴 강렬한 인상.?

패스가 끝이 아니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상대의 공격을 끊어낸 뒤 앞으로 연결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하되, 기회가 되면 묵직한 중거리 슈팅으로 공격을 마무리 짓던 지난 모습은 이번 에버튼전에서도 가감 없이 발휘됐다. 하나는 아쉽게 골포스트를 빗겨나갔고, 다른 하나는 하워드 골키퍼의 몸을 맞고 코너킥으로 이어졌는데, 이 두 번의 슈팅이 남긴 강렬한 인상은 홈 구장 리버티 스타디움에 모인 홈 팬 모두를 매료시켰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페널티 박스 밖에서의 슈팅에 소극적이었던 스완지였기에 이러한 슈팅들은 앞서 언급한 긴 패스와 마찬가지로 기성용의 경쟁력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공격을 마무리지음은 물론, 수비 전환의 타이밍까지 늦출 수 있는 슈팅은 경쟁자 데 구즈만이나 브리턴에 비해 기성용이 강세를 보이는 부분이고, 이것이 곧 '스완지의 기성용'이 '기성용의 스완지'로 변해가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앙 수비, 라우드럽 감독이 제시한 새로운 과제.

후반 10분, 라우드럽 감독은 기성용에게 예정에 없던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결정적인 실수를 반복하던 중앙 수비 테이트 대신 브리턴을 투입한 것. 이로써 동일 포지션을 소화할 선수가 기존의 데 구즈만-기성용과 함께 3명이 됐고, 그 중 기성용이 중앙 수비로 내려갔다. 5년 전, 캐나다에서 열린 2007 U-20? 월드컵에서 기성용-최철순-배승진으로 구성된 플랫 3가 아득하게 떠오르는 순간이었으며, 라우드럽 감독과 기성용 사이에 '믿음'이라는 연결 고리가 강하게 형성돼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실 전문 수비 자원이 아닌 선수를 과감히 수비 라인에 기용한다는 건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이적 시장을 통해 들여온 선수들만 보더라도 공격 자원은 이른 시일 내 투입돼 발을 맞추지만, 수비 자원은 기존 라인과의 호흡을 고려해 투입 타이밍을 신중하게 잡는 게 일반적이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성용 또한 기본적인 수비 위치를 잡는 것부터 더 나아가 플랫 4의 구성원으로서 라인을 컨트롤 하는 부분까지, 적잖은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랬던 점을 감안하면 기성용이 남은 30여 분 동안 주어진 과제를 ?무난하게 해결했다고 평해도 무방할 듯싶다. 후반 36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펠라이니에 헤딩 추가골을 내줬으나 기성용의 전담 마크 실패는 아니었다. 가끔 수비 뒷공간을 내주긴 했으나 적극적인 경합과 태클을 통해 커버 플레이까지 펼쳤다.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도 큰 탈 없이 잘 해내며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는데, 다만 본래 위치에서의 활약이 좋았던지라 그곳에서 조금 더 뛰었더라면 어땠을까 욕심도 난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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