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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오른쪽 풀백 이 용, 우여곡절 축구인생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2-09-22 08:47


울산 이 용. 사진제공=울산 현대

울산 현대의 오른쪽 풀백 이 용(26). 경기 하남초 6학년 때 축구교실을 다니면서부터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이 용은 종가집의 귀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공부보다 축구에 소질을 보이자 결국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서울 우이초로 옮겨 본격적으로 공을 찬 이 용은 줄곧 풀백의 매력에 빠져 지냈다. 풀백이 안성맞춤이었다. 공격도, 수비도 되는 선수였다. 이 용은 "그 동안 풀백만 봐서 그런지 편하다. 풀백은 많이 힘들다. 공격도, 수비도 해야 된다. 수비가 주 임무이긴 하지만 공격할 때는 과감하게 해야 한다. 빠른 공수전환이 중요한 자리다"고 밝혔다.

그런데 2005년 인생의 첫 굴곡이 생겼다. 영등포고를 졸업한 뒤 중앙대 입학이 취소됐다. 다른 대학교 입학을 알아보다 다시 중앙대로 돌아가려 했지만 입학 정원 초과에 걸리고 말았다.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프로 연습생과 지방대 입학이었다. 그러나 이 용은 1년 유급을 택했다. 축구를 쉬는 동안 방황기를 보냈다.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 방황을 했던 것 같다.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며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 싫어 신문배달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회상했다.

이 용은 왜소했다. 고교 1학년 때까지 키가 1m53밖에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저그런 선수일 뿐이었다. 연령별 대표팀에도 한 번 발탁된 적이 없다. 그러나 고3 때부터 스무살이 되던 2005년 키가 부쩍 컸다. 중앙대 4학년 때 대학 선발과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선발됐다.

이듬해 꿈에 그리던 프로에 데뷔했다. 행운이 따랐다. 오범석과 김동진 등 대표급 풀백들에 막혀 2군을 전전하던 시즌 초반 기회가 찾아왔다. 오범석이 대표팀에 차출돼 풀백 요원이 필요했다. 이 용은 김호곤 울산 감독의 부름을 받고 1군에 합류, 컵대회를 포함해 25경기를 뛰었다. 이 용은 "당시 운이 좋았다. 2군에서 같은 포지션을 소화했던 선배도 몸이 좋지 않아 내가 대신 올라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용(왼쪽). 사진제공=울산 현대
이후 오범석이 수원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이 용은 부동의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했다. 수비수임에도 날카로운 크로스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 장점은 김현석 수석코치를 만나면서 극대화됐다. 이 용은 "대학 때는 크로스에 대한 자신감이 컸다. 그런데 프로에 온 뒤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 때 김 코치님에게 많이 배웠다. 직접 시범도 보여주시고 '힘을 빼고 문전으로 배달하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한 번의 굴곡은 올시즌 초반이었다. 4월 8일 광주전(1대0 승)에서 쓰러졌다. 오른무릎 내측 파열 부상을 당했다. 3주간 깁스를 한 뒤 재활과 경기감각 끌어올리기에만 두 달을 허비해야 했다. 그러나 부상을 털어낸 뒤 빠르게 부활했다. K-리그, 아시아챔피언스리그, FA컵 등에서 '철퇴축구'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최근 3경기에서 4개의 도움을 올렸다. 나머지 훈련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는 "정규 훈련이 끝나면 신욱이(중앙대 후배)와 따로 크로스-헤딩 훈련을 한다"고 전했다. 코칭스태프에서 나눠주는 영상도 기량 발전의 힘이 된다. "경기 직후 만들어주시는 영상을 보면서 마인드컨트롤 한다."

취미가 웨이크보드인 이 용은 "더 노련해질 필요가 있다.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의욕이 앞서서 플레이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보완해야 한다"며 프로 의식을 드러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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