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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재밌는 이유는 다양한 전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공격, 미드필드, 수비 숫자를 다르게, 혹은 선수 위치를 다르게 배치하는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팀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통해 같은 자원으로 다른 전술을 구사했을때 어떤 변화가 오는지 두 눈으로 목격한 바 있다. 이처럼 축구에서 다양한 전술이 가능한 이유는 무승부가 있기 때문이다.
무승부에도 차이가 있다. 수비 '위주'로 하겠다와 수비'만' 하겠다는 전략은 전술에도 영향을 미친다. K-리그 논란의 중심이 된 부산의 '질식수비'와 바르셀로나를 제압하고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 첼시의 수비축구 사이에 온도차이가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첼시는 25일(한국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누캄프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2대2 무)에서 지독한 수비축구를 펼쳤다. 1차전(1대0 승)에서도 강력한 수비를 선보인 첼시는 바르셀로나의 막강 공격력을 무력화시켰다. 8명 이상 때때로 전원이 진을 치고 있는 첼시의 수비축구는 부산의 '질식수비'와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첼시의 수비축구는 지루하지 않았다. 수비축구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부산의 '질식수비'는 상대방의 공격을 틀어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비와 미드필드 사이의 공간을 최소화해 상대에게 공격할 공간을 내주지 않겠다는게 1차 목적이다. 공간을 막는게 공을 뺏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무게 중심이 뒤쪽에 있어 공격작업시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골을 넣는 것보다 먹지 않겠다는 생각이 앞서 있다. 반면 첼시의 수비축구는 달랐다. 공격하듯 수비했다. 뒤쪽에 웅크려 있었지만, 과감한 전진압박이 계속됐다. 공을 뺏어 앞으로 나갈 기회를 항상 엿보고 있었다. 언제든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을 생기게 했다. 당연히 보는 입장에서는 첼시의 수비축구에 흥미를 느낄 수 밖에 없다.
4강 2차전에서 첼시의 수비가 돋보였던 이유는 역시 디디에 드로그바의 존재가 컸다. 드로그바는 아직도 3년전 일을 있지 못한다. 사상 첫 '빅이어(유럽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위해 순항하던 첼시는 2008~2009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홈 2차전(1대1 무) 종료직전 터진 이니에스타의 동점골로 무너졌다. 원정 1차전에서 0대0으로 비겼던 첼시는 이 골로 인해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경기 중 나온 몇차례의 결정적 오심은 첼시 선수들을 흥분시켰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분노를 표했던 드로그바였다. 드로그바는 당시 중계 카메라를 응시하며 분통을 터뜨려 징계까지 받았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이를 악문 드로그바는 와신상담에 성공했다.
드로그바는 1차전에서 단 하나의 유효 슈팅을 결승골로 연결했고, 2차전에서도 바르셀로나의 수비를 괴롭혔다. 드로그바의 진가는 첼시가 게리 케이힐의 부상과 존 테리의 퇴장으로 수비 공백이 생겼을 때 나타났다. 수비진영으로 내려온 드로그바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커리어 초반 수비수로 활약했던 드로그바는 과감한 몸싸움과 운동능력으로 수비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역습시에는 공격의 선봉장으로 나섰다.무릎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했던 드로그바는 혼신의 플레이로 첼시에 결승행 티켓을 안겼다.
바르셀로나의 패싱 게임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첼시의 수비축구는 더 빛났다. 수비축구가 재미없다는 것은 편견이다. 수비축구를 재밌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태도의 차이다. 드로그바나 토레스 같은 전방 공격수가 있다면 다른 수비축구를 할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팬들이 요구하는 것은 수비축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 뒤에 빠른 역습으로 상대 골망을 가르는 장면은 더 큰 카타르시스를 선물할 수 있다. 첼시 팬들의 함성이 컸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