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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울지 않으리라 했는데. 죄송합니다. 몇자 적어왔어요. 근데, 글이 눈에 안 들어오네요."
마음이 가다듬고 소감문을 읽기까지는 몇 분간의 정적이 더 필요했다.
1998년 K-리그 부산에 입단하자마자 미남스타로 숱한 여성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K-리그 관중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연장 골든골.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의 극적인 득점. 그때마다 그는 반지에 키스하며 환한 미소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탈리아,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까지 대륙을 누비며 선수생활을 했던 풍운아이기도 했다.
지난 14년간의 프로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을까. 안정환은 이날 계속해서 울었다. 특히 아내, 가족, 팬들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목이 메었다.
31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 은퇴 기자회견은 '박수 칠 때 떠나는' 또 한명의 월드컵 영웅을 보내는 자리였다.
안정환은 "나는 행복한 선수다. 월드컵을 세 번이나 뛰었다. 선수로서 최고의 순간을 누렸다. 오늘이 '선수 안정환'으로 불리는 마지막 날이지만 팬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께 받은 사랑은 평생 잊지 않겠다. 내 자신에게 평생 잊지말라고 끊임없이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안정환은 "사실 더 뛰고싶다. 계속 운동을 해 오면서 몸상태도 유지했다. 하지만 마음은 2002년, 몸은 2012년이다.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마지막까지 기다려준 신태용 성남 감독님께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힘들었던 한달이었다"고 했다.
쏟아지는 눈물의 의미에 대해선 "힘들었던 때보다 좋았던 때가 많았다. 지금 눈물은 어쩌면 아쉬움의 눈물이다.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때문에 유니폼을 벗는다. 하지만 아쉽다.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이제 안정환은 사업가로 변신한다. 안정환은 "당분간 쉬고 싶다. 나만을 위해서 지금까지 아내가 많이 희생했다. 이제는 아내를 도와주고 싶다. 예전부터 유소년 축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런 쪽으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정환의 아내 이혜원씨는 화장품 사업 등에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안정환은 "처음에는 축구말고 다른 사업은 힘들었다. 하지만 자꾸 하다보면 나아질 것 같다"고 했다.
은퇴 경기를 고사한 일에 에 대해선 "물론 뛰고 싶다. 하지만 지금 시점은 한국축구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다. 개인적인 바람 때문에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뛴다는 것이 한국 축구에 해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욕심을 접었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는 2월 29일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최종전 결과에 따라 최종예선 진출 여부가 판가름난다.
불우했던 학창시절에 대한 생각은 부정보다는 오히려 긍정이었다. 안정환은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런 부분이 나한테는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힘을 줬다. 편한 생각을 하고 편하게 생활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안정환이라는 생활을 만들어줬던 계기였다"고 말했다.
손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중학교 2학년 시절 프로축구경기장에 볼보이를 하러 갔다가 당대 최고 선수였던 김주성(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다. 안정환은 "처음 프로축구 경기장 찾았을 때 김주성 선배 사인을 받으러 갔는데 사인을 안 해주고 그냥 갔다. 충격을 받았다(웃음). TV에서 본 대스타였다. 그렇게 나도 김주성 선배를 본받고 싶었다. 아, 나도 저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말했다.
아내 이혜원씨와는 전날(30일)밤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안정환은 "골을 넣고 키스하던 반지는 지금 아내가 목걸이로 사용하고 있다. 어제는 일찍 자려고 했으나 서로 누워서 얘기 한마디 못했다. 마음이 아팠다. 아내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아마 울면서 잠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장에는 안정환의 팬클럽 회원들도 찾아와 눈길을 끌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