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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몰리나의 만화 축구, 눈물도 털어냈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08-28 15:41



2년 전 한국 땅을 밟은 그는 검증된 용병이었다.

성남에서 보낸 두 시즌동안 50경기에 출전, 22골-11도움을 기록했다. 지난해 성남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최고를 경험했다.

미련없이 떠났다. 변화를 선택했다. 올초 10년 만의 K-리그 우승에 성공한 FC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용병 판타스틱 4'의 시대가 열렸다며 기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충돌했다.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은 낙제점이었다. 홀로 걷도는 듯 했다. 계륵같은 존재였다. 인내도 길지 않았다. 다시 이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외풍이 심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그는 긴 설움을 묵묵히 걸어왔다. 만화 축구에서나 나올 법한 충격적인 기록이 탄생했다. 몰리나(31·콜롬비아)가 K-리그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3라운드 강원과의 홈경기에서 사상 첫 골-도움 해트트릭을 동시에 작성했다. 공격포인트 '그랜드슬램'이다. 국제 축구에서도 보기 드문 진기록이다.

팀이 터트린 6골에 그의 이름 석자가 모두 있었다. 서울은 몰리나의 기적같은 활약을 앞세워 6대3으로 대승하며 올시즌 최다연승인 7연승을 질주했다. 3골-3도움(6개)은 K-리그 통산 한 경기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다. K-리그를 떠난 샤샤(수원, 성남 시절 두 차례)와 윤정춘(부천) 이상윤(일화) 등이 5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바 있다.

90분은 '몰리나 쇼'였다. 골→도움→도움→골→도움→골, 숨막힌 질주였다. 전반 9분 포문을 연 그는 전반 18분과 후반 2분 기가막힌 패스로 데얀의 연속골을 어시스트했다. 멈추지 않았다. 후반 13분 전매특허인 정교한 왼발 프리킥으로 다시 골망을 흔든 그는 10분 뒤 이승렬의 올시즌 데뷔골을 도왔다. 그리고 후반 36분 해트트릭 골로 대미를 장식했다.

데얀-몰리나-제파로프-아디로 이어지는 판타스틱 4에서 그는 주목받지 못했다. 융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제파로프가 지난달 3일 전북전을 끝으로 이적하면서 그의 진가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강원과의 홈경기 전까지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2골-4도움)로 예열한 몰리나는 이날 화산이 용암을 내뿜듯 폭발했다.

감격에 젖었다. "축구를 하면서 3골-3도움은 처음이다. 6개의 공격포인트를 한꺼번에 기록한 적도 없다. 오늘 같은 결과가 나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지금 너무 행복하다."


더 이상 아픈 과거도 없다. 몰리나는 "힘들었던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믿어준 동료들이 고맙다. 모두가 기다려줬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낸 것 같다"며 "부진할 때도 의기소침하거나 고개를 숙인 적은 없다. 열심히 땀을 흘렸기에 불행했던 순간이 행운으로 바뀐 것 같다. 팬들께도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기분이 들어 기쁘다"며 웃었다.

최용수 서울 감독대행은 "3골-3도움은 나도 처음 봤다. 쉽게 나올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기존 선수들과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엄지를 세웠다.

골-도움 해트트릭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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