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한국축구, 떠난 박지성을 잊어라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1-08-11 14:05


◇2010년 5월 24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천천히 일본팬들을 응시하는 박지성. 스포츠조선 DB

조광래호가 일본에 0대3 참패를 당하자 아니다 다를까 국가대표를 은퇴한 박지성(30·맨유)의 이름이 고개를 든다. 단적인 예로 일본에 지고나자 포털 검색어로 출전 명단에도 없었던 박지성이 인기 검색어로 급상승했다. 또 네티즌의 댓글 중에는 박지성이 없어 졌다는 식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박지성이 이번 한-일전을 뛰었다면 경기 내용과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선수들은 박지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일본 미디어는 경기 뒤 박지성이 없는 한국이 흔들렸다고 평가했다.

7개월 동안 박지성의 공백은 가려져 있었다

조광래호는 떠난 박지성을 그리워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얘기해서 박지성을 잊어야 한국축구는 발전할 수 있다. 박지성이 당장이라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돌아와 복수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한국축구의 발전을 늦추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박지성은 지난 2월 카타르아시안컵을 마치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오른무릎이 자주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좀더 맨유 클럽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는게 이유였다. 그리고 33세가 되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는 지금 같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따라서 젊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게 맞다고 했다. 그렇다고 박지성의 복귀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둔 것은 아니다. 한국축구가 정말 위기에 빠졌을 때 국민이 박지성을 원한다면 복귀를 제안할 수 있다고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은 말했다.

조광래호는 박지성이 빠지고 난 후 5번의 친선경기에서 3승1무1패를 기록했다. 이번 일본전 패배 이전까지 승승장구했다. 박지성의 공백이 이렇게 빨리 메워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안 보면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박지성이 없어도 잘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광래 감독은 숙적 일본과의 고비를 쉽게 넘어지 못했다. 순탄했던 조광래호에 급제동이 걸렸다. 졸전 끝에 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한국축구가 지금 박지성을 찾을 정도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아직 박지성이 구원 등판할 그런 엄청난 위기는 아니다. 아직 조광래호는 제대로 된 게임을 시작도 해보지 않았다. 다음달 2일 레바논과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전이 시작인 셈이다.

지금 위기는 박지성이 나설 때가 아니다

조광래호는 한-일전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박지성이 대표팀을 떠난 7개월 동안 '제2의 박지성'이라고 할 대안을 키워내지 못한 점이다. 박지성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김보경 손흥민 등의 이름을 말했다. 조 감독은 구자철 지동원 등을 박지성 자리에 세워 보았다. 박지성이 찼던 주장 완장은 박주영에게 넘겼다. 이적할 팀을 찾느라 훈련도 제대로 못한 주장 박주영이 보여준 경기력과 리더십은 실망스러웠다. 모두가 최고라고 했지만 스스로를 낮췄던 박지성식 리더십이 사라지면서 현재 대표팀에는 위기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해결사가 없다.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다. 한국축구는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3년 이내에 '포스트 박지성'을 찾아 성장시켜야 한다. 한국이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일본축구는 나카타 히데토시가 2002년 은퇴 이후 나카무라 šœ스케가 무게 중심을 잡았고, 이제는 혼다와 하세베를 축으로 돌아간다. 가가와의 성장 속도도 무척 빠르다.

뉴 캡틴 박주영이 바로 서라

한국축구가 박지성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경우 일본과는 전혀 다른 추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얘가 지단이 빠진 프랑스축구다. 2006년 독일월드컵 준우승 이후 지단이 은퇴한 프랑스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프랑스가 살아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박주영이 서둘러 주장의 참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박주영은 서둘러 자신의 거취를 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기력을 좋게 유지할 수 있다. 또 대표팀 내 후배들도 박주영을 존경의 눈빛으로 볼 것이다. 주장이 몇 달째 새 둥지를 못 찾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 박지성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던 영건들은 프로의식을 갖고 빠르게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해가야 한다. 현재의 실력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박지성의 빈 자리를 제대로 차지하지 못할 경우 다시 박지성이 돌아온다면 그 보다 더한 치욕스런 일은 없을 것이다. 박지성이 구세주로 조광래호에 투입되는 날이 없어야 한국은 일본에 당한 '8월 10일의 수모'를 씻을 수 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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