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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분석]조광래호의 굴욕, 일본 축구에 농락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08-10 22:17


◇10일 오후 일본 삿포로 돔에서 A대표팀과 일본 축구국가대표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0대3으로 끌려가던 후반 조광래 감독이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다. 삿포로=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굴욕적이다.

1954년 3월 7일, 축구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씻었다. 첫 한-일전이었다. 적지에서 5대1로 대승했다. 57년이 흘렀다. 75번째 한-일전이 10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렸다. 0대3, 사상 첫 3골차 영패의 수모를 당했다. 3골차 완패는 1974년 9월 28일 1대4 패배 이후 37년 만이다.

그라운드는 냉정했다. 축구의 수준, 질이 달랐다.

예견된 재앙이었다. 선수 구성부터 잘못됐다.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의 고집이 화를 불렀다. 박주영은 이적 문제로 팀 훈련 한 번 못했다. 중앙 수비수 이정수-이재성도 비정상적인 조합이었다. 이재성은 소속팀인 울산에서 백업이다. K-리그 출전은 지난달 16일이 마지막이었다. 조 감독은 일종의 특혜를 줬다. 7일 조기 소집해 별도로 훈련시켰다. 그러나 떨어진 경기 감각은 사흘 훈련으로는 부족했다. 울산의 주장 곽태휘는 이날 벤치를 지켰다. 좌우 측면에 포진한 이근호와 구자철은 전문적인 측면요원이 아니다.

전술도 낙제점이었다. 마치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이었다. 프로는 일본, 한국은 아마추어였다. 최악의 경기력이었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완패했다. 주도권을 내줬다. 한국 축구 특유의 강력한 압박이 사라졌다. 볼 주위에 3~4명이 에워쌌다. 수적으로 우세했을 뿐이다. 느슨한 플레이로 위기를 자초했다. 선수들이 몰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빈공간이 생겼고, 그곳으로 패스가 연결됐다. 기성용은 거친 플레이를 몇 차례 펼친 후 사라졌다. 김정우와 이용래는 겉돌았다. 공수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일본은 생각대로 플레이를 했다. 31세로 일본 선수 중 최고참인 엔도의 영리한 경기 운영에 모두가 놀아났다.

패스도 차원이 달랐다. 일본의 환상 패싱 축구에 농락당했다. 스페인 축구를 방불케했다. 예술이었다. 엔도, 가가와, 혼다, 하세베 등의 직선 스루패스와 횡패스는 오차가 없었다.


수비라인은 악재가 겹치면서 전반에 일찌감치 무너졌다. 왼쪽 윙백은 수난을 당했다. 김영권이 왼발목 부상으로 24분 교체됐다. 박원재가 교체투입됐지만 엔도의 슈팅 때 안면을 강타당해 뇌진탕 증상을 보였다. 그는 전반 37분 박주호로 교체됐다. 수비라인의 리더 이정수는 1대1 싸움에서 허망하게 나가 떨어졌다. 가가와의 선제 결승골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실수를 범하며 일본에 찬스를 허용했다. 이재성은 국가대표급이 아니었다. 위치 선정, 대인 마크 등에서 한계를 나타냈다.

한국의 창은 둔탁했다. 구자철이 후반 두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것이 전부였다. 야심차게 꺼내 든 '좌근호-우자철' 카드는 실패였다. 이근호의 움직임은 비생산적이었다. 전술 이해도가 떨어졌다. 개인기도 일본 선수에 비해 형편없었다. 가가와의 선제골은 이근호의 무리한 드리블로 볼을 빼앗기며 시작됐다.

볼프스부르크 주전경쟁에서 밀린 구자철은 겉멋에만 신경썼다. 투지도 정열도 없었다. 오른쪽 윙백 차두리가 반짝했을 뿐이다.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측면의 숨이 끊어지자 빛을 잃었다. 가가와에 이어 혼다, 또 다시 가가와가 연속골을 터트릴 때까지 한국의 측면은 실종됐다. 공격의 파괴력이 떨어졌다

박주영은 철저하게 고립됐다. 캡틴이지만 그는 후반 13분 교체됐다. 조 감독의 용병술이 실패한 단적인 예다.

그라운드에 리더가 없었다. 구심점이 없다보니 위기대처 능력이 상실됐다. 실점을 허용한 후 전열을 재정비해야 하지만 전면에서 독려할 선수가 없었다.

한국 축구로선 최악의 하루였다. 다음달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이 시작된다. 이대로 가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조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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