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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것이 축구인생의 한(恨)이었다. '선수로서는 못한 것을 감독으로서 더 잘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월드컵 감독으로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 준비하겠다."
마침내 신태용 축구인생에 첫번째 월드컵이 찾아왔다. 신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명문과 거리가 먼 영남대 출신의, 월드컵과 거리가 멀었던 '비주류'가 만든 '반란'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성남에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FA컵 우승을 일궈내며 차세대 지도자로 불린 신 감독은 2014년 슈틸리케호의 수석코치로 대표팀에 입성했다. 그의 지도력은 위기 때마다 빛을 발휘했다. 각급 대표팀이 벼랑 끝에 몰릴 때마다 지휘봉을 잡아 '특급 소방수'로서 활약했다.
러시아월드컵 진출이 불투명해지자 한국축구는 다시 신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두번.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이란-우즈베키스탄과의 연전이었다. 실패하면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강하다. 이 한 몸 불살라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루겠다." 신 감독의 출사표였다.
의구의 목소리도 많았다. 가벼운 그의 이미지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꿈꾸던 A대표팀을 맡은 신 감독은 달라졌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공격축구를 포기했다. 전략과 훈련은 꽁꽁 숨겼다. 취재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쉽지 않은 두 경기였다. 이란전, 우즈벡전 모두 내용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새가슴'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하지만 신 감독의 머릿속에는 온통 월드컵이었다. 마침내 신 감독은 꿈을 이뤘다.
신 감독의 임무는 러시아행이었다. 어쨌든 신 감독은 또 다시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다. 첫번째 난관을 넘어선 신 감독은 시간을 확보했다. 내년 6월 열리는 러시아월드컵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본인의 색깔을 마음껏 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A대표팀 선수들은 스폰지처럼 전술을 빨아들이더라. 내가 생각하던 축구를 완벽히 선보일 수 있다"고 기대하던 신 감독은 이제 비로소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축구를 시험할 수 있게 됐다.
이번 두 경기에서 보여준 축구는 분명 신태용식 축구는 아니었다. "한국축구가 언제까지 수비축구로 세계에 도전할 것인가. 마음껏 공격적으로 부딪히는 축구를 하고 싶다"던 그만의 공격축구를 월드컵에서도 보고 싶다. 이제 한국축구에 본격적인 신태용의 시대가 열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