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인터뷰] '미키 17'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4관왕 부담 없이, 이젠 즐길래요" (종합)

안소윤 기자

기사입력 2025-02-24 07:20


[SC인터뷰] '미키 17'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4관왕 부담 없이, …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스포츠조선 안소윤 기자]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거장의 귀환이다. 봉준호 감독(56)이 신작 '미키 17'로 국내 관객들과 재회하는 소회를 전했다.

28일 전 세계 최초 국내에서 개봉하는 영화 '미키 17'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이자,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18번째 미키가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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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17' 비하인드 스틸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은 영화 '기생충'(2019)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 4관왕을 석권한 봉 감독의 복귀작이다. 최근 스포츠조선과 만난 봉 감독은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오스카 레이스를 끝낸 직후인 2020년 2월에 딱 6~7주 동안만 쉬었다. 정말 꾸준히 일해왔다. 2020년 여름에 '미키 17'의 원작 소설을 처음 받았고, 거기에 매혹돼서 한 챕터씩 번역본을 읽기 시작했다. 2021년에 시나리오를 썼고 그해 11월 로버트 패틴슨을 처음 만났다. 다행히 모든 과정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서 2022년 가을부터 촬영을 시작했고, 2023년 한 해 동안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을 조금 길게 가졌다"고 돌이켰다.

예상보다 개봉 시기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선 "작년에 개봉했으면 딱 시기가 맞았을 텐데, 배우조합 파업과 배급 일정 조정 등이 맞물리면서 이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의 개봉이 약 6~7개월씩 미뤄졌고, 라인업도 엉키게 됐다. 미국 배우조합 파업이 워낙 세서 촬영뿐만 아니라 후시 녹음도 못하고 홍보도 하면 안 되더라. 그러다 보니 올해 개봉을 하게 된 거다. '기생충'이 일본과 영국에서 늦게 개봉을 해서 정확한 개봉 종료일이 2020년 2월이었다. 그래서 5년인데, 이걸 6년 만의 복귀작이라고 말씀하시면 섭섭하다. 마치 일을 안 하고 놀러 다닌 것 같지 않나(웃음). 휴가도 없었을뿐더러 '미키 17'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도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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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미키 17' 개봉 전 런던 프리미어와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통해 작품을 먼저 선보이며 현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시사가 끝난 직후에는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독재자 케네스 마샬이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빗댄 캐릭터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이에 봉 감독은 "제가 타임 테이블을 정확히 설명드린 이유가 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2021년 9월에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2022년 가을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현지 취재진과 만난 그는 "저보고 방구석에 크리스탈 볼을 숨겨놨냐고 물어보시더라. 그게 서양식 점쟁이들이 사용하는 도구인가 보더라. 아무래도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한 영화제인 만큼, 기자 분들도 재미난 질문들을 많이 하셨다. 이와 관련된 질문들을 반복적으로 받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특정 정치인을 이야기한 게 사실이다. 영화에 커플 독재자가 나오는데, 케네스 마샬의 아내인 일파 마샬 역은 원작 소설엔 없는 역할"이라며 "독재자가 커플일 때 더 무섭고 영화적으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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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17' 스틸.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또 참고가 될 만한 실존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봉 감독은 "특정 국가를 언급하기엔 좀 그렇지만 마르코스 부부도 있고,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부부도 1980년대 말에 굉장한 악명을 떨쳤다"며 "마크 러팔로와도 과거 정치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역사적으로 끔찍하지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나쁜 정치인의 모습을 섞어서 보여주자고 했다. 분명히 그렇게 한 거였는데, 관객 분들이 각 나라마다 현지 상황을 투사해서 보신 거 같다. 그걸 제가 쫓아가서 말릴 순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마크 러팔로는 '미키 17'을 통해 데뷔 후 첫 악역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본인도 캐스팅 소식을 듣고 처음엔 당황해했다"며 "'도대체 왜?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어?'라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형님, 배우이시지 않냐. 이런 캐릭터를 표현해 달라는 거다'라고 설명드리니까, '맞아 나는 프로다'라고 바로 수긍하셨다. 이 상황만 봐도 귀여우시다. 케네스 마샬은 냉철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기 보단 헛점이 많은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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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17' 스틸.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남 스타인 로버트 패틴슨은 극 중 광기 어리면서도 찌질한 면모를 드러냈다. 봉 감독은 "저를 마치 꽃미남 파괴자로 보시는 거 같은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웃음). '마더' 때 원빈 씨를 안 잘생기게 찍으려고 노력했는데, 보통 일이 아니더라. 저랑 홍경표 촬영감독이 원빈 씨를 찍다가 '잘생겼어!'하고 감탄했다"며 웃으며 말했다. 이어 로버트 패틴슨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트와일라잇'에서 처음 봤는데, '저 청년은 어쩜 저렇게 새하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창백하고 멋진 이미지가 다가 아니더라. 나중에 보니 연기적으로도 욕심이 많아서 미국 인디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윌렘 대포와 호흡을 맞춘 '라이트하우스'에선 엄청난 광기 에너지를 폭발시키더라. 그 영화를 보고 나니까, 로버트 패틴슨이 미키 18 역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기할 때 굉장히 여러 가지의 느낌을 표현해 내서 1인 2역이 아니라, 다역을 소화한 것과도 다름없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잘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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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이 '기생충'의 차기작인 만큼, 관객들의 기대에 부담감은 없는지 묻자, 봉 감독은 "솔직하게 느낀 적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사실 베를린국제영화제도 경쟁 부문으로 와달라고 요청받았다. 제가 운이 좋았던 것도 맞지만, 이제 상에 대해 더 바랄 게 없다. 오히려 비경쟁 부문으로 가서 즐겁게 영화를 틀고 오고 싶었다"며 "예전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 '펄프 픽션'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오스카에서 갱상을 수상했다. 그 형님이 1963년생인데, 31살 때 그런 일들이 다 벌어지더라. 당시에 막 북적북적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반면 저는 '기생충' 때 이미 50대였다. 물론 흥분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볼 수 있는 두 개의 자아가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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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계는 지난 몇 년 간 소중한 동료 배우들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봉 감독은 최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고 이선균을 향한 미안함을 전했다. 또 이선균에 이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김새론에 대해선 "그 친구를 '여행자' 시사회에서 본 적 있었는데, 굉장히 안타깝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봉 감독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한다. 잘못에 대해선 엄격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만큼의 관용도 갖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정과 관용의 균형이 맞았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안소윤 기자 antahn22@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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