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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소희 기자] 32년 일기로 세상을 떠난 가수 故 김현식의 생애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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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은 지병으로 인해 입원 중일 때에도 무대에 설 정도로 무대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당시 김현식은 무대에 오른 뒤 "제가 아프기 보다는 술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 여러분들 술 마시지 마라"라고 했지만, 그는 이미 간경화(간경변증)를 앓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이별의 종착역'을 부른 김현식은 당시 이 노래를 받고 "나 죽으라고 한 노래 아니냐"라고 했다고. 실제로 김현식은 '이별의 종착역'을 발매한 뒤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다만 김현식의 죽음은 예상치 못 한,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모두가 그가 투병 중인지 알았지만, 사망 사흘 전까지 6집 앨범을 녹음하고 있었고, 숨지기 두 시간 전에는 기획사 대표와 다음 일정에 대해 전화통화까지 했다고.
알고보니 김현식에게는 숨겨진 사정이 있었다. 김현식은 1980년 앨범을 선보였지만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86년 유재하와 함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다만 유재하는 팀 결성 6개월 만에 탈퇴했다.
이후 김현식은 '비처럼 음악처럼'이라는 곡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예술가적인 예민함으로 방송가에서 악명이 높았다. 김현식은 음향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방송을 철회하기까지도 했다.
이에 대해 김현식은 당시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김현식씨가 비타협적이고 고집이 세며, 개성이 강하다고 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맞는 것 같은데, 비타협적이진 않다. 좋게 말하면 정의감이 있다. 그래서 음악이 솔직하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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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현식이 구속된 다음날, 1987년 11월 1일 새벽 유재하가 교통사고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많은 사건사고 속 김현식의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향했고, 같했던 어머니와 누나는 캐나다로 떠났다. 이에 김현식은 철저히 혼자가 됐다.
방황과 슬픔 속 김현식은 1988년 2월 처음으로 무대에 복귀했다. '못난이의 음악을 과연 들어줄까' 라는 걱정과 반성 속 머리를 밀고 무대에 오른 김현식은 수많은 응원과 함성에 감동했다. 까칠하기로 유명했던 김현식은 이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팬들의 응원에 화답하기로 마음 먹은 것. 김현식은 다시는 대마초에 손도 대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다만 김현식은 떠나간 가족, 동료로 인한 사무치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 했다. 이때부터 김현식은 술을 많이 먹기 시작했다. 삶을 포기했다고 보일 정도로 술을 마셨다고.
결국 김현식의 목소리는 탁해졌고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됐다. 심지어는 복수가 점점 차올라 임산부처럼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김현식은 배를 가리기 위해 한여름에도 스웨터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는 간경화 말기 현상이었다. 다만 김현식은 기타를 놓지 않았다. 심지어는 고통을 잊기위해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오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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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기자 yaqqo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