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초점]"여성이란 아픔 사라지길"…양희은, 20년 지켜온 '여성시대'의 힘(종합)

'여성시대'를 이끄는 서경석, 박금선 작가, 양희은, 강희구PD(왼쪽부터). 사진제공=MBC

[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가수 양희은이 20년간 한결같이 '여성시대' 라디오를 진행한 원동력은 자신을 통해 이뤄진 사회적 공감대였다.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는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를 맡고 있는 양희은의 DJ 20주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양희은을 비롯해 서경석, 강희구 PD, 박금선 작가가 함께 했다.

MBC는 20년 이상 라디오를 진행한 DJ에게 '골든마우스 상'을 시상한다. '여성시대'의 양희은은 이종환, 김기덕, 강석, 김혜영, 이문세, 배철수, 최유라, 임국희에 이어 역대 9번째 수상자가 됐다.

MBC 표준FM '여성시대'는 1975년 UN 세계 여성의 해 기념으로 탄생한 임국희의 '여성살롱'을 잇는 프로그램으로, 1988년 '여성시대'로 프로그램명을 바꾼 이래 31년째 계속됐다. 1999년 6월 7일 처음 '여성시대' 마이크를 잡은 양희은은 오는 7일 진행 20주년을 맞이한다. 양희은의 목소리로 전해진 편지만 5만 8000여통, 총 방송시간은 1만 4600여시간에 달한다.

양희은은 어느덧 '여성시대' 진행 20주년을 맞이했다. 사진제공=MBC

이날 간담회에서 양희은은 지난 20년에 대해 "1년 정도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아마 20년을 목표로 했다면 절대로 못했을 거다. 하루하루가 쌓인 것뿐"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연예계 생활 49년간 새로운 노래 말곤 앞날을 계획한 적이 없다. 노래도 20대에만 할 생각이었는데 6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하고 있다"면서 "언제까지 해야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내 감성을 누르는 묵직한 사연이 많은 방송이라 힘들었다"고 무거운 속내를 토해냈다.

양희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희재 엄마'다. 통증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든 팔로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사흘에 걸쳐 보낸 사연이었다. 양희은은 자신이 받은 감동에 대해 "30주년 음반을 희재 엄마와 이땅의 소녀가장들에게 헌정했었다"고 회고했다.

박금선 작가는 양희은보다도 5년 먼저 '여성시대'에 참여해온 선배다. 그는 "과거엔 가정 폭력이나 성매매 피해자들의 SOS가 담긴 손편지가 많았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나 해외 이주하신 분들의 편지도 많다. 요즘은 효도를 다짐하는 젊은 친구들의 편지가 많다"고 돌아봤다. 양희은도 "그땐 폭력 남편 같은 사연이 참 많았다. 전유성 선배님이 '이른 아침부터 이런 사연 해야되냐'고 하셨다"면서 "'해야돼요! 이런 편지가 안올 때까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강조했다.

양희은은 "말하지 못했던 얘기를 털어놓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매맞는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쉼터로 나오는 용기가 생긴다"면서 "어려움에 대한 공감의 파도, 청취자들 사이에 생겨나는 거대한 어깨동무, 그 연대가 '여성시대'가 주는 힘이고 위로"라고 시대 정신을 간직한 DJ이자 가수로서의 사명감을 드러냈다.

'여성시대' DJ인 양희은(왼쪽)과 서경석. 사진제공=MBC

양희은은 "이제 여성 말고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여성'을 강조하는 건 그만큼 치우치고, 모자라고, 메꿀 곳이 많고, 아픔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여성이란 단어가 없어지고, 남녀의 구분이 필요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박금선 작가도 "남녀를 떠나 약자이고 소수자라면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거들었다.

양희은은 "'여성시대'는 MC로서의 기술이 필요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전달만 잘하면 된다. 사투리가 있으면 사투리도 섞어가며 했다. '여성시대'의 힘은 편지를 써서 보내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온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한편, "항상 적군을 살핀다. 출근길엔 김영철, 퇴근길엔 컬투를 모니터링한다"며 DJ로서의 경쟁심도 드러냈다.

양희은은 골든마우스상 수상자이자 '여성시대' DJ로서의 향후 행보에 대해 "내가 '여성시대'를 힘으로 휘두르려고 하고, 청취자들의 사연에 충고를 하거나 가르치려 들때가 바로 그만둬야할 때"라며 "언제든 마이크 내려놓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가수보다 라디오 DJ를 더 열심히 했다. 그만큼 '여성시대'를 사랑했다. 콘서트 할때도 빠지지 않았다. 세상 이렇게 해본적 없는 짝사랑"이라며 뜨거운 애정을 고백했다.

MBC 표준FM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는 매일 오전 9시 5분부터 11시까지 방송된다.

김영록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