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6년 스포츠조선 엔터 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열 번째 주인공은 그만의 감각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키미제이의 디자이너, 김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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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끝나고 나서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그래도 일이 많아져서 좋죠. 이제 곧 F/W 준비로 또 바빠지겠네요.
쇼 전에는 불가항력적으로 의상 준비와 손님 맞을 준비로만 열중하고 있죠. 밤새도록 할 정도였으니까요. 쇼가 끝나고 나서는 바잉 미팅과 그 내용을 정리하고, 출장도 많아요. 또 이렇게 인터뷰도 계속 응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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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주로) 컬러에 대해서 영감을 얻는 편이에요. 이번 17 S/S는 퍼플과 핑크가 주된 컬러였어요. 그리고 그 컬러들에 레드나 블루를 같이 적용했죠. 이번 콘셉트가 '카르마'여서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유니콘, 복고풍의 프리즘 컬러는 자개장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패턴도 자개장과 비슷하지만 스트리트 무드와 옛날 분위기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많았다고 생각해요.
소재는 제가 좋아하는, 그때그때 쓰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촉촉하고 찰랑거리는 원단을 좋아하거든요. 또 상반되게 고시감이 살아있고 가벼운 원단들, 또 입었을 때 착용감이 편안한 게 좋아요.
-이번 시즌 콘셉트가 '7696 카르마'였죠. 어떤 의미인가요?
'7696'은 저의 어린시절과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겹쳐진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이번 컬렉션을 떠올렸어요. 자신이 어떤 부모님에게서 태어난다는 건 불가항력이잖아요. 전 그걸 카르마라고 생각해요. 카르마는 '업'이라고도 합니다. 그 자리에 태어난 게 자신의 업이거든요. 사실 지금 자신이 어떤 걸 하고 싶고, 그 일을 이루는 과정은 그 업을 받아들이고 풀어나가는 과정이죠. 과거에 대해 주관적 혹은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 가야겠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는 게 카르마라는 단어에 들어가야 할 내용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부모님들의 젊은 시절의 절정인 76년대, 그리고 96년대는 우리의 젊은 날이 시작되는 시기, 그 부분의 이미지를 융합해서 컬렉션을 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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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자주 키미제이 옷을 입어 주셨어요. 그래서 저희의 좋은 뮤즈죠. 키미제이 의상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카리스마 있는 섹시함이랄까요?
-국내 말고도 파리나 뉴욕 등 해외 컬렉션 무대에도 오르셨어요.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뉴욕 패션위크에서 온 스케쥴 쇼로 17 S/S 의상으로 했었어요. 근데 한국 콘텐츠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컨셉 코리아'의 일원으로 뽑혀서 든든한 지원을 받아 진행됐죠. 키미제이, 요하닉스, 그리디어스 이렇게 세 브랜드가 한 무대에 설 수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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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패션위크의 쇼들이 굉장히 빨랐어요. 착장 간의 시간 간격도 좁고, 워킹도 빠르죠. 물론 쇼 자체의 콘셉트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첫 쇼였기에 언론사나 바이어 분들을 배려하기 위해 더 애썼습니다. 진행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서울 컬렉션과 뉴욕의 배경음악도 달랐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쇼가 있나요?
제가 쇼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저에게는 소중한 작품들이죠. 쇼 분위기가 모두 다르거든요. 굳이 하나를 뽑자면 전 파리에서 선보였던 16 F/W가 기억에 남네요.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단독으로 진행했는데, 사실 주먹구구로 했던 것 같은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바이어들의 반응도 괜찮았어요. 무언가 색다른 이미지였라고 느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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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저만의 공간에서 제가 작업한 것들로 상업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어릴 땐 '그게 뭘까?'하고 생각만 했지만 구체적으로 봤을 땐, ,그런 일을 하는 건 '디렉터' 더라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디렉터를 할 순 없으니까요.
-패션디자이너가 아닌 디렉터, 꽤 새로운데요?
사실 대학생 때부터 패션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땐 엄두를 못 냈어요. 왜냐면 정말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많은 디자이너분들이 존경스럽지만 '그것을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설치 미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가구 디자인도 했었죠. 디자이너로 3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디자인 보다는 제조, 유통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죠. 또 거기서 배운 점이 많죠. 그때 '소자본으로 디렉팅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도 패션을 공부했고, 그래서 지금 다시 돌아오려면 무언가를 더 쌓아놓아야겠다 생각을 해서 준비를 따로 한 거죠. 회사에 그만두고 나서.
-그 꿈을 꾸었던 어린 시절의 김희진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호기심 많고, 말 하고자 하는 걸 다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어요. 그리고 욕심도 많아서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죠. 꼭 공부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에서. 근데 겁도 많아서 해보고 싶은 생각에서만 그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도 이번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패션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들었군요.
대학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고 싶었죠.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는데 회사가 제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저는 남들처럼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3년동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일 했거든요. '이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 무슨 일을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죠. 사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요령'이라는 것도 필요한데, 전 그런 게 없었나 봐요. 일과 제 삶의 방향이 일치해야 제 삶의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럴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조금은 불안정한 일이지만 내가 모은 돈으로 새롭게 시작해보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전포고를 했죠. 부모님께도 '나를 믿고 지켜봐 달라'고 말했어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성공한 딸을 보며 부모님께서도 무척 좋아하시겠네요.
좋아하셨죠.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부터 항상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이셨어요. 공부를 하던, 회사에 가던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죠. 하지만 어머니들은 다르잖아요. 사업 초창기 때는 어머니도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냥 불안하니까요. 그래도 불안한 내색 안하시면서도 계속 지켜봐 주셨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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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미제이 브랜드 자체가 아트 워크가 기반이고, 예술가의 길을 걷고 싶었어요. 하지만 예술을 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업적인 요소가 필요하죠. 그래서 결국 디자이너를 택했을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천직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가끔 후배들이 와서 '이 일을 하고 있으면 어때요?'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라고 대답해줬어요. 돈을 떠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잖아요. 지금 딱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순 없겠지만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죠.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어쩌면 가장 트렌디한 직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트렌드를 얻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저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심상이나 무의식, 그리고 저에 대한 글을 적고 있어요. 그래서 트렌드 부분에서는 취약한 편이죠. 일부러라도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에 기술의 발달 덕분에 SNS나 웹 상에서 정보를 접하기 너무 쉬운 세상이 됐잖아요. 예전보다 사람들의 흐름에 대해 쉽게 캐치할 수 있어요.
-SNS도 좋지만, 해외 출장이 잦으니 직접 보고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아요.
맞아요. 해외 일정이 있을 때는 시장 조사는 기본으로 하지만, 로컬 사람들이 즐겨 가는 장소,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 즐기는 것들에 대해 좀 더 계획적으로 즐기는 편이에요. 우리나라 생활상도 좋아하지만 여러가지 문화에 대해 알고 있어야 모두가 융합된 걸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디자이너 김희진이 생각한 트렌디한 인물은 누굴까요?
사실 한 사람으로 정의 내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개인의 고유한 개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었을 때, 그 순간이 가장 트렌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모두가 트렌디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힘들어요. 저에게는 과정일 수 있지만 남들에게는 결과물 이거든요. 그걸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 정신력이 강해야 될 것 같아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일까요?
디자이너는 자기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사실 잘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남들이 봤을 때 나인걸 알려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걸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효과적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하세요. 그리고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구성할 지 고민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yangjiyoon@sportschosun.com 사진 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