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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순정' 도경수, "첫 사랑? 슬프고 우울했던 느낌"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6-02-05 07:38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태닝을 7번이나 해도 뽀얗기만 하던 얼굴이 전남 고흥 촬영장에 내려간 지 이틀만에 새까매졌다. 순박한 바닷마을 소년이 되기 위한 준비는 이걸로 충분했다.

"2주간 영화 촬영을 하다가 주말에 엑소 콘서트를 하러 서울에 올라갔어요. 다들 너무나 하얀 얼굴이라, 제가 흑인처럼 보이더라고요. 거리에 차는 왜 그렇게 많은지…. 어느 새 제가 고흥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나 봐요."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 도경수는 카메라 앞에서 구슬땀을 흠뻑 쏟았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순정'은 그 땀의 결실이다. 영화 '카트'로 연기를 시작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와 '너를 기억해'를 거치며 쑥쑥 성장한 도경수의 첫 주연작. 1991년 고흥의 바닷마을 다섯 친구들의 우정과 풋풋한 첫 사랑을 담았다.

무대 위의 엑소 멤버 디오가 아닌 '배우'로 마주한 도경수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잘생긴 얼굴은 더욱 입체감 있게 도드라졌고, 표정이 매우 풍부했다. 특히 울림이 큰 중저음의 목소리가 감미로웠다. 여기에 연기까지 잘하니 충무로 제작자들이 탐낼 만하다.
이 영화에선 동네친구 수옥(김소현)을 짝사랑하는 열일곱 소년 범실 역을 맡았다. 다리가 불편한 소녀를 업고 다니고 남몰래 챙겨주는 소년의 가슴앓이가 꽤 뭉클하다. 고3 때 경험한 첫 사랑을 "슬프고 우울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는 도경수는 연기를 하며 당시 감정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첫 사랑의 의미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느끼는 그대로 연기하려고 했어요. 인물의 행동과 대사, 현장의 분위기에 맞춰 제가 그 안으로 쑥 들어가는 거죠.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감정을 캐릭터로부터 얻게 될 때, 그것이 제 일부가 됐을 때, 정말 희열을 느껴요."

첫 사랑은 이뤄지지 않아서 더 아련한 법이다. 범실의 아픔은 관객의 마음까지 저리게 만든다. 영화의 절정을 이루는 이별 장면에선 캐릭터 안으로 쑥 들어가 어느새 하나가 돼버린 도경수를 발견하게 된다. "촬영 당시 등 뒤에서 팽팽한 고무줄이 저를 잡아당기는 느낌이었어요. 잠시 쉬고 싶을 만큼 숨이 벅찼죠. 감독님의 '컷' 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그 고무줄이 탁 끊어지더라고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어요. 스태프들이 몸을 주물러줘서 간신히 경직이 풀렸죠. 도경수와 범실이 완벽하게 교집합이 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가 들려준 또 하나의 사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남자주인공(조인성)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소년(도경수)이 환시(幻視)라는 걸 깨닫고 그를 떠나보내기 전 발을 씻겨주는 장면이다. "저는 원래 눈물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 처음 '울컥한다'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됐어요. 내게 없던 감정을 캐릭터로부터 얻게 된 거죠. 그 이후로는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요. 정말 신기하죠?"

도경수는 "그 희열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며 몸을 살짝 떨었다. 스스로 "연기 욕심이 많다"고도 했다. '순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묻자, 되려 자신의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은 장면을 떠올리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욕심은 곧 열정이고, 열정은 반드시 노력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도경수의 성장판은 아직 열려 있다.

도경수가 신이 나서 수다스러워지는 모습도 봤다. 영화에서 함께한 친구들 얘기에 한껏 들떴다. 두세 살 어린 또래인 연준석, 이다윗, 주다영은 물론이고 여섯 살이나 어린 김소현과도 허물없이 어울렸다. 고흥에서 촬영하는 틈틈이 게임도 하고, 볼링장도 갔다. 남자 셋이서 술자리도 가졌다. "반바지 차림에 돌아다녀도 아무도 못 알아보던 걸요.(웃음) 지금은 가질 수 없는 자유로움을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일하러 간 거지만, 친구들과 여름방학을 함께 보냈다는 느낌이 더 커요."

다섯 친구들의 끈끈한 우정은 스크린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찧고 까불고 웃는 그들의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 '리얼'이었나 보다. "우리 영화에 23년 후 성인 모습도 나오잖아요. 우리가 그 나이가 돼서, 선배님들이 하신 그 연기를 하게 된다면 어떨까 진짜 궁금해요. 아이의 성장 과정을 12년 동안 촬영한 '보이후드'처럼, 우리도 그렇게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suzak@sportschosun.com


배우 도경수가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포즈를 취했다. 도경수는 영화 '순정'에서 어릴 적 동네친구 수옥만을 바라보는 범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순정'은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도경수의 첫 주연영화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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