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배우 박혁권이 역대급 1인 2역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고려 최고의 은거 고수이자 길태미(박혁권)의 쌍둥이 형 길선미. 앞서 길선미는 잃어버린 엄마 연향을 찾다 위험에 빠진 이방지를 구해준 인연이 있다. 당시 길선미는 땅새에게 "오늘부터 네 생이 끝날 때까지 네 어미에 대해 관심을 끄고 살거라. 연향이라는 이름을 입 밖에 꺼내서도 아니 된다. 고려에 큰 죄인이다"라는 뜻 모를 말을 남겨 궁금증을 자아냈다. 또한 땅새의 무술 스승인 장삼봉(서현철)에게 "척준경의 검법이 되살아났다. 이방지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뒤 자취를 감췄다.
이방지는 의문만 남기고 떠난 길선미가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중 드디어 모든 의문을 풀어줄 길선미를 만나게 된 것. 이방지는 길선미를 마주하자 "장삼봉 기억하지? 당신이 날 장삼봉에게 맡겼잖아. 나한테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라며 과거의 인연을 되새겼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욱 이목을 끈 대목은 1차원적인 1인 2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성향이 전혀 다른 1인 2역 캐릭터를 연기할 때에는 이전의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반대 모습을 연기하려 노력하지만 박혁권은 이런 1차원적인 연기를 뛰어넘어 두 사람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접점을 표현했다. 길선미의 모습에서 길태미의 모습을 스리슬쩍 드러내며 시청자가 느낄 이질감을 줄였다.
이방지와 과거 인연을 떠올리는 동안 토지개혁을 놓치는 실수를 범할 때도 "우리 모두 닭 쫓던 개가 됐네? 뭐, 어쨌든 각자 찾아보자고"라며 길태미 서러운 농담을 던지는가 하면 자신을 길태미로 오해하는 분이(신세경)를 향해서 "아이고, 어찌 이런 아랫것들조차 길태미를 아는 것인가. 얼마나 나대고 다녔으면…"이라며 혀를 찼다. 길선미와 길태미가 한데 섞인 위트였다.
이뿐인가? 길태미 특유의 시큰둥한 화법도 놓치지 않았다. 토지개혁 문서가 담긴 보따리를 넘기지 않으려는 분이에게 "괜한 것에 목숨 걸지 말고 넘기거라. 어차피 네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네 주인의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는가 하면 나름 은둔 고수로 정평이 나 있는 자신의 이름을 동네 친구 부르듯 말하는 이방원에 "아이씨"라며 입을 삐죽여 폭소를 유발했다.
무엇보다 분이를 놔주고 돌아서는 길선미를 잡는 이방지에게 "조급해 마라. 칼 잡고 살다 보면 다시 보게 될 거다. 아니면 그 소중한 물건과 목숨 걸만한 아일 놔두고 나를 쫓던가. 맘대로 해"라는 길선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쿨한 모습을 보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분이를 겁박해 토지개혁 문서를 빼내려는 길선미와 다른 면모였다.
그동안 막장드라마에서 복수의 수단으로 쓰였던 1인 2역. 박혁권은 자칫 단순하고 유치할 뻔번 했던 1인 2역의 한계를 완벽히 타파했다. 누가 길태미 쌍둥이 아니랄까 봐 곳곳에서 길태미 서러운 모습을 드러내 시청자를 쥐락펴락했다. 길태미를 떠나 보내고 헛헛해진 시청자의 마음을 충분히 달랜 박혁권. 그야말로 1인 2역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new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