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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인생사 업보다. 또한 인연이고, 운명이다. 박훈정 감독에게 영화 '대호'가 그런 존재다. 직접 쓴 시나리오. 여러 제작자의 손을 거쳐 몇 년 후 박 감독에게 다시 돌아왔다. '결자해지 하라'는 강권, 압박, 회유와 함께.
'대호'는 박 감독 연출의 '신세계'와 시나리오를 쓴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등 전작들과는 결이 다르다. 사회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이 한층 누그러졌다. "확실히 제 성향의 작품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너무 많이 나오죠.(웃음) 사실 저는 사내들의 욕망이 득시글거리는 '센' 영화를 좋아해요. 하지만 '대호'의 시대 배경을 그렇게까지 냉소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더군요. 아련한 존재들이 사라져간 애달픈 시대니까."
'대호'는 제작비 140억원이 투입됐다. 관객 연령대가 넓어 연출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했다. 박 감독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 땀을 닦았다. "저는 그냥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편해요. 제 스타일대로 해도 되잖아요. 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와서 볼 테니 부담도 덜하죠. '대호'가 청소년관람불가였다면 100분짜리로 만들 수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혹시'라는 의문이 뒤따르더군요. 누군가 영화를 이해 못하면 어떡하나 염려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러닝타임은 자꾸 길어지고…. 연출도 기존과는 달랐어요. 저는 좀 냉소적이고 드라이한 편인데, '대호'에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밀착시켜야 했죠. 어휴, 정말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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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창작의 아이디어를 일상에서 얻는다고 한다. 뉴스, 영화의 한 장면, 길에서 본 풍경, 사람들의 대화 등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다. "어떠한 세계나 계층에 대한 이해, 경험, 지식이 축적돼 있으면 사소한 자극 하나로도 발화가 돼요. 그 불꽃이 번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사고하는 게 습관이 돼 있어요. 사실 영화 일 말고는 제가 잘할 줄 아는 게 없기도 하고요."
박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엄청난 '영화광'이다. "학창 시절 동네 비디오가게 두 곳을 작살냈을 정도"로 온갖 영화를 섭렵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찾기 위해서 전국의 비디오 총판을 다 뒤졌다. 대구까지 내려가서 구한 비디오를 품에 안고 돌아오던 그날의 가슴 벅찬 설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가 박 감독에게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박 감독은 영화를 보면서 대사를 받아적고 구성을 바꿔보면서 독학으로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일일이 제작사를 찾아다니며 시나리오를 돌렸고, 군제대 후 공모전에 당선돼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됐다. 그리고 작가로 주목받은 이후 원래 꿈이었던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저는 영화에서 '재미'가 가장 중요해요. 딱 하나의 가치만 골라야 한다면 '무조건' 재미를 선택할 겁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바란다면, 제 영화를 본 사람들마다 해석이 달랐으면 합니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잖아요. 어떻게 보고 느끼느냐는 관객의 몫이죠. 그러기 위해 관객의 감상을 가이드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대호' 이후의 차기작도 영화팬들의 관심사다. '신세계2'를 고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호'가 성과를 거두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죠. 하지만 우선은 좀 쉬고 싶어요. '대호'가 너무 힘들었어요. '신세계2'가 아니더라도, 다음엔 무조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만들 겁니다.(웃음)"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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