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대한민국에서 SRPG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이덕규 기자

기사입력 2015-11-02 14:44




PC 게임이 강세였던 한국 게임 시장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SRPG'라는 장르는 일본에서 발전한 장르다. 그러나 일본 외의 국가에서도 전략 게임과 RPG가 합쳐진 형태의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1980년대 북미-유럽을 풍미했던 '던전앤드래곤' 계열의 다양한 PC게임도 전략 게임과 RPG를 혼합한 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도 'SRPG'라는 장르 자체를 정의한 것이 일본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이웃나라 일본에서 '파이어엠블렘' 등으로 SRPG 열풍이 일어났지만 한국에는 조금 늦게 SRPG 붐이 일어났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언어의 장벽이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어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는 생갭다 많지 않았다.

일반적인 PC 환경에서는 일본어의 표시에 문제가 있었고, 그런 문제가 없는 콘솔 게임이라고 해도 어린 게이머 중에서 대사가 많은 어드벤처나 롤플레잉 게임을 즐길 정도의 일어 실력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본과 한국의 게임 풍토 차이였다. 80년대 말부터 닌텐도의 '패미컴'과 '슈퍼패미컴'이나 세가의 '메가드라이브'가 삼성전자나 현대전자 등 대기업을 통해 한국에 판매되었다. 이들은 일부 게임을 한국어로 발매했을 정도로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모두 게임 사업에서 철수하고 만다. 대신 한국에서는 XT와 AT를 위시한 PC 시장이 큰 성장을 거듭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PC는 '정보화'를 명목으로 국가에서 주도해 보급할 정도의 대규모 사업이었다. 국민학교나 중학교 등 정규 교육 과정에도 PC 교육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PC게임 시장도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랑그릿사가 한국에서 유명한 이유는 역시 한국어로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PC게임의 불법복제는 큰 문제였지만, 그래도 여러 회사가 해외 PC게임을 한국 시장에 발매했고 그 중에 SRPG가 끼어 있었다. 일본에서의 인지도로만 보면 닌텐도의 '파이어엠블렘' 시리즈가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메사이어의 '랑그릿사'가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랑그릿사'는 한국어화 되어 PC로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상륙한 SRPG 열풍

1990년대 초 중반 한국에는 SRPG가 잇달아 상륙했다. 메사이어의 '랑그릿사', 소프트스타의 '천사의 제국' 시리즈, 그리고 TGL의 '파랜드 택틱스' 등이 인기를 얻었다. 이 게임들은 '랑그릿사'를 제외하면 대작 게임까지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천사의 제국' 시리즈는 1993년 대만 소프트스타가 PC로 내놓은 SRPG다.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투나,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 병과 전직 등 SRPG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사의 제국' 시리즈를 유명하게 한 것은 등장 캐릭터가 섹시한 여성 캐릭터라는 점이었다. 이 게임에는 극단적일 정도로 여성캐릭터만 나왔고 이것이 게이머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SRPG였다


TGL의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도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시리즈는 본래 RPG인 '파랜드' 시리즈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1993년 '파랜드 스토리 먼 나라의 이야기'로 시작된 시리즈는 한국에도 정식 발매 되어 인기를 끌었고, '파랜드' 시리즈를 SRPG로 만든 외전 '파랜드 사가'(1996)가 국내에는 '파랜드 택틱스'라는 이름으로 출시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랑그릿사', '천사의 제국' 등 외산 SRPG가 인기를 얻자 여기에 자극을 받은 국산 SRPG도 등장했다.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다. 1995년 소프트맥스는 한국 최초의 시뮬레이션 RPG '창세기전'을 출시했다.

이 당시 국산 RPG로 '신검의 전설(1987)'이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1994)'등이 나와 있었지만 본격적인 SRPG 시도는 '창세기전'이 처음이었다. 만화가 김진을 일러스트레이터로 기용한 점이 화제가 되는 등 여러모로 기대를 모았지만 첫 시도인 '창세기전'은 생각처럼 큰 흥행을 하진 못했다. 밸런스나 버그 문제 등 완성도가 아직 부족했다.




이듬해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의 문제점을 해결한 리메이크작인 '창세기전2'를 내놓았고 드디어 성공을 거뒀다. 이 시기 '창세기전2'는 '국산 게임의 자존심'으로 해외 게임에 밀리지 않는 큰 인기를 누렸다. '창세기전2'의 성공을 바탕으로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 시리즈를 이어나가며 한국 게임 시장에서 큰 명성을 누리게 된다.

확실히 이 시기 한국 게임 시장에서 SRPG는 하나의 '열풍'이었다. 게이머 사이에서 '랑그릿사',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 같은 일본 SRPG는 물론 '창세기전' 같은 대작 SRPG에 도전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런 인기는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일본 니혼팔콤의 '밴티지 마스터 택틱스(1997)가 한국어로 정식 발매 되었고, '플레이스테이션' 열풍에 힘입어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나 '택틱스 오우거'도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SRPG의 인기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많던 SRPG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 게임 시장은 1990년대 말 두 번의 충격을 겪었다. 하나는 1997년 말 시작된 경제위기였다. 대한민국 전체가 경제위기의 여파로 신음했고, 게임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 경제위기로 많은 게임 유통사가 무너지거나 게임 사업에서 철수했다. 원래 한국 게임 시장에서 불법복제 성향이 강하기도 했지만, 경제위기로 자금 회전이 급속히 경색된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런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IT 정책이었다.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기 시작했고, PC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게임 시장에서 타격을 입은 게임회사들도 새로운 '시장'인 온라인 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런 상황에서 SRPG가 설 자리는 없었다. 느긋하게 전략을 생각하고 육성 방향을 짜는 SRPG는 PC방과 대신 '스타크래프트'나 '레인보우식스' 같은 빠른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그나마 MMORPG가 대세였지만, 여기에도 SRPG 장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SRPG는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니폰이치의 '디스가이아'


물론 해외는 달랐다. 콘솔 시장에서 니폰이치의 '디스가이아(2003)' 시리즈나 스퀘어의 '프론트 미션' 시리즈, 세가의 '사쿠라 대전' 시리즈와 '전장의 발큐리아(2008)' 시리즈 등 SRPG는 계속 '명품게임'을 표방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한국에서 콘솔 게임 시장은 미약했고 점점 더 마니아나 하는 게임으로 전락해 갔다.

휴대폰 보급이 크게 늘어나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RPG는 꽤 각광받았지만, SRPG는 모바일 게임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취급 받아 왔다. 피처폰 시절에는 '영웅서기' 시리즈나 '제노니아' 시리즈 같은 모바일 RPG가 흥행했지만 이들은 액션 RPG나 정통 RPG를 표방하고 있었지 SRPG를 표방한 게임은 아니었다.

2012년부터는 '애니팡'을 계기로 스마트폰 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SRPG 장르의 게임은 이 새로운 시장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블레이드'나 '레이븐' 등의 모바일 게임이 '액션' RPG를 표방해서 큰 성과를 거둔 것과 대비된다. 몇몇 콘솔 SRPG가 스마트폰으로 이식되기도 했지만 큰 반향은 얻지 못했다.

그래도 최근 넥슨이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과 '슈퍼 판타지 워' 등 모바일에서 정통 SRPG를 표방한 게임을 내세우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슈퍼 판타지 워'의 경우 한국뿐 아니라 11월 전세계 동시 런칭을 목표로 하는 패기(?)를 보여줬다. 사전 런칭 한 호주에서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나름 선전을 거뒀다. '모바일에서 SRPG는 인기 없다'는 오랜 편견을 이들 게임이 깨고 다시 한 번 한국에서 SRPG 열풍을 다시 불러 올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모바일 게임으로 '정통 SRPG'를 표방하고 있는 슈퍼 판타지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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