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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 기억하는 배우는 되풀이 하지 않는다

김겨울 기자

기사입력 2015-01-20 08:16



지난해 스크린에서 조진웅은 거론해야 마땅한 배우였다.

'군도','명량', '우리는 형제입니다'와 청룡영화상을 수상하게 된 '끝까지 간다'까지. 무려 4편의 크고 작은 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 거기에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까지 촬영했으니, 아이돌 스케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도 그는 쉼 없이 달린다. 하정우와의 의리로 특별출연한 '허삼관'을 비롯해 '장수상회', '암살' 등 줄줄이 그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한정된 시간 내에 각기 다른 연기와 에너지를 분출하는 조진웅의 시크릿이 궁금했다. 청룡영화상 수상자 특집 인터뷰를 통해 그의 시크릿을 찾아봤다.

"(수상하고) '끝까지 간다'의 팀이 다 모여서 즐겼다. '끝까지 간다'가 여러 상을 받았다. 감독님이 갱상도 받고, 지난해는 '끝까지 간다'로 행복했다." 슬쩍 '상 받을 것을 예상했느냐'고 물었다. "전혀.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다. 청룡영화상에 참석한 이유라고 한다면 (이)선균이 형이 주연배우에 노미네이트 됐지 않나. 축하해주러 갔다. 대종상 때는 참석하지 못해서 청룡에는 가서 선균이 형이랑 '끝까지 간다' 팀에 힘을 실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조연상을 받아서 깜짝 놀랐다. 연말에 좋은 선물이 됐다."

조진웅은 사실 상 복이 없던 배우였다. 그동안 노미네이트는 여럿 됐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번에 조금이나마 한을 풀었다.

"사실 수상을 떠나서 매년 느끼는 점은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것. 책임감도 생기고, 예전에는 내가 맡은 한 캐릭터에만 몰두하면 됐다. 지금은 여러가지가 보인다. 현장 진행 상황이보이고, 감독이 왜 인상을 쓸까. 스태프들과 문제가 있나. 내가 가서 좀 더 분위기를 풀어볼까. 확실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진웅은 이런 말을 남겼다. "관객들과 만났을 때 좀 더 당당하게 만나고 싶어진다. 연기를 할 때, 내 부분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부분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저렇게 하는 게 맞을까. 그런 부담과 책임이 있다. 요즘 부쩍 작품을 선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끝까지 간다'의 화장실 대사는 노래방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그에게 '끝까지 간다'는 부담이자 기회였다. "내 첫 장면을 찍고, 아차 싶었다. 큰일났다. 모니터를 봤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촬영 감독님, 조명 감독님까지 다 부르고, 재미가 없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믿을 것은 스태프 뿐이지 않나. 촬영한 지 4일, 5일밖에 안됐으니 캐스팅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특단의 조치까지 들더라. 내 숨소리, 걸음거리, 호흡이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안들더라. 결국 스태프들과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듯이 만들었다."


그리곤 "공간은 항상 배우를 배신한다. 책으로 볼 때와 항상 다르다. 믿을 것은 스태프 뿐이다. 저녁에 술 한 잔 먹으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고, 부탁했었다. 제발 지적을 해달라. 감독도 선균이 형도. 그때 감독이 그러더라. 자기 연출 서랍에 55개의 알사탕이 있는데, 오늘 12번째 알사탕을 까먹고 있다. 김성훈 감독이 8년 만에 하는 작품이니 얼마나 공을 들였겠는가"라고 추억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아파트 씬 같은 경우도 몇 번이나 고민했다.무술 감독님이 짜 온 액션이 있는데 그대로 못했다. 선균이 형이랑 둘이서 우리가 본 시리즈처럼 고급스러운 액션을 보일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차지게 호흡을 주고 받으려면 막싸움이지 않을까. 사실 스태프들은 합이 짜지지 않는 액션을 하면 배우들이 다칠까봐 걱정을 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보기로 했는데, 답이 안나오더라. 결국 선균이 형과 또 술을 마시러 갔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마셔도 해결이 안됐다. 내일 촬영인데, 답답하더라. 결국 노래방까지 가는데, 노래방 입구에서 촬영하는 아파트 복도와 구조가 똑같은 것 아닌가. 선균이 형한테 '똑같다'고 하고, 거기서 내가 이 쪽 방에 들어가고, 여기가 화장실인 거 같고, 6번 방이 문 같고, 다행히 손님이 없어서 사장님에게 노래방 비를 드리며 양해를 구했다. 그때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더라. 순간 창민이라는 인물이 물 속에 오래 잠겨있었을텐데 얼마나 화장실이 가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창민이가 건수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 가는 그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등학교 연극반 때 호흡까지 기억한다."

'끝까지 간다'의 후일담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대본 한 줄, 액션 하나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력 때문에 감독이 어떤 씬을 편집한 지까지 다 알고 있기도. '끝까지 간다' 뿐이 아니었다. '군도', '명량', '우리는 형제입니다', 최근 개봉한 '허삼관'의 촬영현장도 생생하게 전달했다.

"유치원 이전에는 기억이 별로 안난다. 하하. 초등학교 때부터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반 활동을 했었다. 거기서부터는 애들이 했던 대사, 호흡들까지 다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했던 여학생, 선생님과 대화한 내용, 혼난 내용이 다 기억에 남는다."

그리곤 생애 첫 영화 촬영 현장을 떠올렸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를 찍을 때도 기억에 난다. 숙소 생활을 했는데, 내가 맡은 역할은 이종혁 선배의 패거리 중 하나였다. 그때 수남이, 재남이, 지금은 영화를 하는 친구도 있고 안하는 친구도 있다. 배우 의자라는 게 있지 않나. 거기 앉아서 주연 배우들이 감독이랑 모니터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너무 궁금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나도 하고 싶다. 어느덧 내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 슬쩍 미소가 나와서 감독 안보이는 쪽에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기억력을 칭찬했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전달한다는 것은 보통의 능력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깨달았다. 조진웅의 기억력이 바로 명배우가 된 비결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단, 한 씬도 허투루 취급하지 않는 조진웅의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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