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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영화평] '국제시장', 당신에게 아버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4-11-25 13:39



24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 CGV에서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김윤진과 황정민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195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국제시장'은 오직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고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해내는 이 시대의 아버지의 삶을 진정성 있게 그려낼 예정이다. 오는 12월 17일 개봉한다.
김보라 기자 boradori@sportschosun.com/2014.11.24/

'아버지'란 세 글자. 어떤 의미일까.

엄한, 무심한, 자상한, 든든한…. 관계에 따라 여러가지 형용이 가능하다.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작 ㈜JK필름)이 던진 아버지에 대한 느낌은 '먹먹함'이다.

영화관에 앉는 순간 피할 수 없는게 있다. 감정의 파도다. 처음에 잔잔했던 파도가 점증적으로 조금씩 커진다. 몇차례 고비를 잘 넘겨도 결국에는 휩쓸리고 만다.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참고 참았는데 기어이 뺨을 타고 흐른다. 엔딩 크레딧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영화. 관객에게 어떤 아버지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나도 좋은 관계든, 서먹한 관계든, 서운한 관계든, 심지어 미워하는 관계일지라도 그 나름의 이유 때문에 눈물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기가 쉽지 않다. 울리기로 작정한 윤제균 감독의 치밀한 구성과 명배우들의 실감나는 호연에 굴복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라 아버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덕수가 그렇다. 월남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우리가 이런 일을 겪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이 이런 곳에 와야했다고 생각해봐라"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아버지 사진 앞에서 "아버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라는 늙은 덕수의 독백이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긴 상처에서 출발한다. 자유로울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 거기서부터 삶이 꼬였다. 어린 나이에 장남이란 이유로 '가장'이란 무거운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 파독 광부와 월남전 참전과 이산가족 상봉까지 전쟁이 잉태한 쓰라린 아픔의 역사를 덕수를 통해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격변의 시대 앞에서 개인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사람의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판단할 수 없다. 윤제균 감독이 의도했던 '세대간 소통'은 바로 이해에서 출발한다. 가족과 이웃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옹고집 노인네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치밀한 인과관계 속에 개연성 있게 노출한다.

덕수는 서울대 합격을 포기하려는 동생에게 "인생은 타이밍이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 타이밍은 번번이 놓치고 만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자신의 꿈을 누른다. 안타까운 아내 영자는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은 없느냐"며 타박한다. 머리에 서리가 앉고 삶의 고단함이 주름으로 새겨진 노인 덕수는 아내에게 그제서야 털어놓는다. "선장이 되고 싶었다"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의 가슴에도 묻어둔 꿈이 있었다.

아버지의 삶. 그 거친 배경은 굴곡진 현대사다. 윤제균 감독은 아버지의 고단함을 일그러지고 왜곡된 우리 현대사에서 찾았다. 하지만 정치색은 뺐다. 윤제균 감독은 "70년대까지 시대의 화두는 경제화였다. 50~70년까지 경제화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시기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흥남 철수, 파독광부와 간호사, 월남 파병, 이산가족 상봉 등 눈물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영화. 첫 시도라 의미가 크다. 미국의 '포레스트 검프', 일본의 '올웨이즈-3번가의 석양', 중국의 '인생' 등 자국의 실제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국제시장'을 통한 현대사 엿보기는 반갑다.


현대사 속에서 연대기를 다른 연령대로 소화해야 했던 배우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던 작업. 하지만 다행히 꼭 필요한 자리에 꼭 그 사람일 것 같은 배우가 맞춤형으로 포진했다.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노력이 극대화된 리얼리티를 살려냈다. 특히 20대부터 7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소화해낸 황정민 김윤진이 아니었다면 하는 가정은 아찔할 정도다. 황정민은 가족을 위해 치열한 삶 속에 뛰어든 젊은 시절의 덕수와 옹고집 노인이 된 늙은 덕수를 마치 다른 사람처럼 소화했다. 그의 아내 영자 역을 맡은 김윤진은 파독 간호사 시절 동병상련 덕수와 썸 타던 20대의 그늘진 발랄함부터 중년 아내로서의 안타까움, 노년 아내의 동반자적 그림자 역할을 내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정지영 오달수 장영남 라미란 김슬기는 연기 기술자 답게 각자 제 자리를 듬직하게 지켜내며 진짜 그 시대 인물로 완벽 변신했다.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고단했던 아버지의 삶을 다룬 '국제시장'. 눈물만 있는 건 아니다. 힘든 삶 속에도 웃음과 해학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를 통해 관객에게 눈물을 흄칠 타이밍을 절묘하게 마련해준다. 특별한 반전 없이도 웰메이드 영화가 될 수 있음을 '국제시장'은 묵직한 힘으로 보여준다. 반전 대신 인간 감정의 흐름이 잘 녹아 있는 영화. 굴곡진 감정을 파도처럼 물결치는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기면 126분은 훌쩍 지나간다.

시사회를 마칠 무렵 문득 노인 덕수 보다 연세가 더 많으신 부모님께 표를 끊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고등학생 조카에게도 꼭 한번 보여주고 싶어졌다. 60년 차 세대 간의 엇갈릴 반응.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세대 간의 소통을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는 윤제균 감독의 바람대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국제시장'은 다음달 17일 개봉한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극장을 찾을 수 있는 연말 성수기. 내용적으로나 시기적으로 기본적 흥행의 판은 잘 깔렸다. 메가 히트 여부는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나 감흥을 크게 기대하기 힘든 젊은 세대의 공감과 발걸음에 달렸다.


24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 CGV에서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황정민, 김윤진, 김슬기, 장영남, 오달수, 정진영이 포토타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5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국제시장'은 오직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고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해내는 이 시대의 아버지의 삶을 진정성 있게 그려낼 예정이다. 오는 12월 17일 개봉한다.
김보라 기자 boradori@sportschosun.com/2014.11.24/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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