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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방송평] 첫방 '야경꾼일지', 스토리부터 CG까지 '총체적 난국'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4-08-05 13:17


사진제공=MBC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던가. '조선판 어벤저스'라더니 실상은 '잡탕밥'에 불과했다. 유명 판타지 드라마나 영화에 한 번쯤 나왔을 법한 설정과 장면들을 끌어다 모아서 1시간짜리 드라마를 만든 듯했다. 뼈대가 돼야 할 스토리가 빈약해 유기적 결합이 안 된 탓이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구현하는 데만 치중했을 뿐 정작 중요한 내용물은 부실했다. 판타지인데 CG마저도 형편 없었다. 3일 첫 방송된 MBC 새 월화드라마 '야경꾼 일지'는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다.

'야경꾼 일지'는 조선시대 퇴마사 야경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판타지 활극이다. 귀신을 부정하는 자, 이용하려는 자, 그리고 물리치려는 자, 세 개의 세력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청춘들의 성장과 사랑을 버무린다. 드라마는 "아득히 먼 옛날 사람과 귀신이 뒤엉켜 살던 혼돈의 시대"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한양에 유성이 떨어지면서 궁 안의 결계가 깨져 귀물이 궁에 침범하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조선의 적통왕자 이린은 야경꾼 조상헌(윤태영)의 도움으로 귀물들의 공격에서 생명을 건지지만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왕 해종(최원영)은 아들 이린을 구하기 위해 백두산 마고족 무녀만이 피울 수 있는 전설의 꽃 '천년화'를 찾아 야경꾼들을 이끌고 백두산 원정에 나선다. 해종은 백두산 마고족 무녀 계승자 연하(유다인)을 제물로 이무기 승천의식을 치르려던 용신족 사담(김성오)을 공격해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이무기의 승천을 막아낸다. 여기까지가 첫 방송의 줄거리다.

해종의 백두산 원정은 훗날 주인공 이린(정일우)과 도하(고성희)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건이다. 제작진이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은 강렬한 비주얼에서도 전달됐다. 그런데도 방영 내내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기시감'을 떨쳐낼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태왕사신기', '주몽', '디워(혹은 용가리)',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등등. 네티즌들이 '야경꾼 일지'와 비교하면서 떠올린 작품들이다. 한 네티즌은 "디아블로, 와우(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 최종병기 활, 역린, 태왕사신기, 주몽을 한 회 만에 다 본 듯. 반지의 제왕을 만들려고 했으나 현실은 용가리"라는 혹평을 남겼다. 다른 네티즌은 "인트로는 스타워즈, 유성 떨어질 때 디아블로2, 용신족 정벌 출정 대조영, 스켈레톤 전투 반지의 제왕, 대왕활 득템 주몽, 이무기 등장 용가리, 이무기 저격 최종병기 활. 내일은 또 어떤 장면이 복사될지 기대된다"고 썼다.

원인은 바로 스토리에 있다. 판타지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야기의 짜임새가 없다. 괴물의 공격이든 백두산 원정이든, 여러 사건들이 하나의 맥락 속에 개연성 있게 이어져야 하는데, 장면과 장면의 단순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이야기는 증발되고 강렬한 비주얼만 남아버린 것이다. 또한 아들을 살려야 하는 해종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행동의 동기가 부족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돌았다. 시청자들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스토리가 너무 없어서 몰입도가 떨어지고 재미가 없다", "너무 유치해서 손발이 오글거렸다"는 시청평을 많이 남겼다.

'가상의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과의 조화도 문제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캐릭터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하는데 '야경꾼 일지'는 이를 무시했다. 하늘과 소통하는 백두산 마고족, '악의 축' 용신족은 조선이라는 배경과 동떨어져 존재했다. 복장과 외모가 지나치게 현대적이라 신비주의보단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차라리 배경이 선사시대였다면 나았을 듯하다. "왕 해종과 마고족이 만나는 장면에선 조선사람과 인디언이 만나는 줄 알았다"는 얘기도 종종 눈에 띈다.

CG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확인됐다. 해종과 용신족의 전투에 나오는 이무기, 해골 귀신, 바윗돌 같은 CG로 구현된 비주얼이 전체적으로 과잉됐고 퀄리티가 떨어졌다. 드라마에서 '아바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MBC '구가의 서'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한 한국드라마의 CG와 특수효과가 '야경꾼 일지'에 와서 오히려 퇴보한 듯하다. 혹자는 7년 전 방영된 '태왕사신기'보다도 못하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야경꾼 일지'를 간신히 지탱해줬다. 해종을 연기한 최원영은 인자하면서도 강직한 카리스마로 극의 중심을 잡았고, 야경꾼 조상헌 역의 윤태영은 화려한 액션으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용신족 술사 사담 역의 김성오도 색다른 비주얼과 매서운 눈빛으로 '절대악'을 새롭게 창조했다.

'야경꾼 일지'는 판타지이지만 청춘 로맨스물을 지향한다. 이후에 정일우, 고성희, 정윤호, 서지혜가 본격 등장하면 무게중심이 판타지에서 로맨스로 옮겨간다. 본게임은 그때부터다. '야경꾼 일지'가 시청자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조선판 어벤저스'다운 재미와 몰입도를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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