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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2014]아카데미 시상식이 권위를 갖는 이유

고재완 기자

기사입력 2014-03-03 17:13


사진출처=아카데이 시상식 홈페이지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의 MC를 맡은 엘런 드제너러스는 시상식 진행을 하던 도중 갑자기 "배고프지 않아요? 피자 시켜먹을까요?"라고 말한다. 많은 시청자들이, 아니 참석한 배우들 조차 농담으로 알았지만 실제로 시상식장으로 피자가 배달돼 왔다. 드제너러스가 피자를 들고 객석으로 가자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브래드 피트가 벌떡 일어나 1회용 접시를 받아들고 서빙을 하기 시작한다. 해리슨 포드는 드제너러스가 들고 있던 냅킨을 빼앗아들고 메릴 스트립은 큰 피자를 한 움큼 베어문다.

장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드제너러스는 피자값을 모금하기 시작했고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20달러 정도를 기부(?)했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루피타 뇽은 현금 대신 립밤을 넣었고 이 립밤은 그대로 드제너러스의 차지가 됐다.

우리나라 시상식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시청자들은 "대중이 보는 시상식에서 무슨 짓이냐" "격 떨어진다" "경우 없다"는 항의가 마구 쏟아질게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오스카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런 해프닝을 보고 오스카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올해 '오스카'의 최대 이변은 립밤을 기부한 '노예 12년'의 루피타 뇽의 여우조연상 수상이었다. 대부분 '아메리칸 허슬'의 제니퍼 로렌스가 수상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뇽이 수상을 했다고 "잘못된 시상"이니 "말도 안된다"느니 하는 이들은 없다. 뇽이나 로렌스나 후보에 오른 모두 수상할 자격이 있는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허슬'의 무관도 충격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비티'나 '노예 12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등 다른 작품들도 다 수작이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배우들도 상의 권위를 인정하고 시상식을 축제로 받아들인다. 로렌스나 디카프리오가 수상에 실패했다고 금새 자리를 뜨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후보에 오른 모든 배우들이 시상식에 참석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브래들리 쿠퍼, 해리슨 포드, 케이트 허드슨, 채닝 테이텀, 우피골드버그, 스티븐 스필버그, 앤 해서웨이, 나오미 왓츠, 케빈 스페이시,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크리스 햄스워스, 샤를리즈 테론, 빌 머레이, 제니퍼 가너, 베네딕트 컴버배치, 제시카 비엘, 제이미 폭스, 존 트라볼타, 로버트 드니로, 페넬로페 크루즈, 윌 스미스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스타들이 자신의 수상과 관계도 없는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보니 대중들도 이런 스타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인 오스카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그대로 할리우드 영화 산업으로 넘어간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의 힘이다. 한창 기대를 모았던 이디나 멘젤의 원곡 '렛 잇 고(Let It Go)' 무대에서 그의 성량부족 따위는 이 축제 열기를 식히지 못한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시상식에서도 김혜수가 피자를 시키고 원빈이 서빙을 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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