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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바람이 불었고 따뜻한 봄이 왔다. 오수(조인성)와 오영(송혜교)은 약속을 지켰다. 우리가 사랑할 인연이고 운명이라면, 그 때 다시 만나서 못다한 사랑을 하며 살자는 눈물의 키스, 약속의 키스. 그리고 수술받은 오영이 살았고, 칼맞은 오수도 살았다. 그들은 하얀 눈꽃처럼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에서, 사랑을 재차 확인하는 키스를 나누었다. 그들이 간절히 바란, 그들만의 벚꽃엔딩이었다.
1. 자살하지 마세요.
우리나라는 OECD선진국 가운데, 자살률이 최상위권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순간의 충동적인 선택으로 쉽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드라마 '그겨울'의 여주인공 오영도 최종회를 앞두고 자살을 시도했다. 사랑했지만 붙잡을 수 없었던 오수를, 용서하기 힘들만큼 밉지만 평생 수족이 돼주었던 왕비서(배종옥)를 떠나보냈다. 특히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한 오수의 빈자리는 컸다. 자신도 모르게 중독된 사랑, 그 사랑을 잃은 상실감을 오영은 견딜 수 없었다. 사방이 어둠과 정적으로, 안 그래도 외로운 삶을 살았고 살아가야 하는 오영에겐 더욱. 때문에 오영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다행히 오수가 이를 눈치채고, 오영을 찾아와 살려냈다.
만일 오영의 극단적인 선택이 죽음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오수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술이 성공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수의 절절한 사랑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수와 사랑하며 벚꽃키스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수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살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는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
2. 사랑하세요.
오영이 오수와 다시 만났다. 그리고 오수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그런 오수에게 오영이 말했다. 나는 너를 볼 수 없는데,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두 사람은 오영이 수술에 성공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는 진하게 사랑하자는 약속을 했다.
오수가 남긴 영상을 보고나서야, 오수에겐 자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게 된 오영은 삶에 대한 욕구가 급상승한다. 수술을 맡은 오박사도, 그런 오영의 삶에 대한 의지, 긍정적 마인드에 수술 성공확률이 50%로 높아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5%에 불과했던 오영의 뇌종양 수술 성공확률이, 오수와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 사랑의 맹세덕분에 50%로 높아졌고, 결국 오영의 수술은 성공했다.
오수는 어떤가. 친동생같은 박진성(김범)에게 칼침을 맞았다. 비록 칼침 한방이었지만, 오수는 마이 묵은 표정이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오수는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영이를 보러가야 한다면서. 그에게 진성에 대한 미움따윈 없었다. 오직 사랑하는 영이를 꼭 만나야겠다는 의지밖에는. 그 의지가 결국 오수를 살린 셈이다.
사람에게 삶에 대한 '의지'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그 의지가 혼자서 품는 것이 아닌, 쌍방향에서 이뤄지는 사랑이라면 더욱. 오영이 뇌종양을 이겨내고, 오수가 칼침을 이겨낸 것도, 그들이 서로에게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만나서 사랑하자는 약속. 나 혼자 한 약속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위기속에서 강해질 수 있었던 셈이다. 한 마디로 사랑의 힘이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시청자에게 러브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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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김범)이가 오수를 칼로 찔렀다. 진성은 가족을, 사랑하는 희선(정은지)을 살리기 위해, 오수를 버린 셈이다. 시청자로선 진성에게 배신감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리 김사장이 진성의 가족을 볼모로 오수를 죽이도록 강요했다고 하나, 진성에게 오수도 친형제와 다름없는 사이가 아니던가.
진성이 오수를 찌르도록 만든 게, 과연 일드 원작의 결말을 쫓기 위해서일까. 그것과는 좀 다른 면을 읽을 수 있다. 원작에서 주인공은 호스트지만, 그겨울 주인공 오수는 불법사설 도박장을 다니는 겜블러다. 도박꾼이다. 도박은 해롭다. 위험하다. 도박에 한번 빠지면 마누라도 팔아먹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도박에서 따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잃는 사람이 있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수는 도박에서 손을 씻으려 했다. 오영을 만난 뒤엔 더욱. 더 이상 희주에 대한 죄책감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막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성은 늘 오수의 카드실력에 대해 자신만만해 했다. 오수는 무조건 딸 것이란 착각. 돈이 필요하면 우리가 카드로, 도박으로 벌면 된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오수는 도박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여러차례 진성을 설득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오수는 도박에서 손을 씻어도, 진성은 돈이 있건 없건 언제든 도박판에 뛰어들 녀석이었다.
진성의 예상대로, 오수는 김사장을 카드로 무너뜨렸다. 그것은 진성에게 도박의 재미를, 짜릿함을, 끊을 수 없는 유혹을 남긴다. 그런데 그 도박 때문에, 종국에 와서 진성이 친형같은 오수를 찔러야 하는 비극을 야기한다. 도박판에 얼씬도 하지 말란 오수의 말을 들었다면, 진성이 오수를 찌르는 괴로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성이 앞으론 카드의 '카', 도박의 '도'자도 꺼내지 못할 계기가 마련된 셈이고, 그는 물론이고 희선이나 가족들에겐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마지막회는, 어쩌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뭔가 폭풍처럼 몰아치길 기대한 시청자라면 더욱. 하지만 '그겨울'은 인생의 기본에 충실한 담백한 결말을 쫓았다.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것들,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간과하고, 과소평가하는 것들에 대해서. 오수와 오영에게 필요한 것 무엇인가. 왕비서와 박진성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명, 한명을 통해, 시청자와 함께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공유한다. 공익광고같은 결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그리고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 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