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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예'라고 답한 다수가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반응은 일단 '무시'다. 하지만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이, 아니라는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면, 무시했던 시선은 '불쾌함' 혹은 '호기심'으로 나뉜다. 그리고 '예'라고 답한 사람들이 '아니오'라는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변화를 예감한다.
변화는 시작됐다. 파견된 모든 의원과 마의들은 고주만의 지시에 따라, 소의 여물과 마을 주변의 우물 등에서 숙주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이 든 물질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고 질병으로 죽어나가는 마을 사람의 수는 늘어갔다. 심지어 광현을 돕던 강지녕마저 관련 질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광현은 소두창이 아닌 중독이라고 판단한 자신이 틀렸다며 자책했다.
정말 광현의 판단이 틀렸을까. 마의 10회를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병에 걸린 의녀 지녕이 광현의 진단이 옳았다고 끝까지 믿어주었고, 자신이 물을 마셔서 병에 걸린 것 같다며, 마을 주변에 흐르는 물을 좀 더 알아 볼 필요가 있음을 내비쳤다. 마의 백광현은 10회에서 독이 되는 숙주를 찾아, 강지녕과 병에 걸린 사람들 그리고 소들을 구할 수 있을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를 외친 또 한명이 눈에 띤다. 바로 마의 백광현밖에 모르는 바보 숙휘공주(김소은)다. 이천에 역병이 돌고 있다는 말에, 그녀는 백성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파견된 견습마의 백광현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건 아닌지 좌불안석이었다. 호위무사를 시켜 백광현을 빼내오라는 불호령도 서슴지 않는다. 숙휘공주의 물불가리지 않는 백광현 사랑에 상궁과 호위무사는 당황한다.
사랑 참 무섭다. 아무리 백광현을 향한 숙휘공주의 사랑이 남다르다 해도, 안 될 말이다. 공주가 천민과 사랑에 빠지다니. 궁궐이 뒤집힐 일이다.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백이면 아흔 아홉은 '미친 짓'이라고 말할 것이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분위기상 결국 숙휘공주의 사랑은 필패로 흐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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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숙휘공주의 사랑은 매우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마의 9회에서 숙휘공주는 단 두 장면에 출현했고, 모두 백광현을 향한 무모한 가슴앓이였음에도 불구하고, 9회 내내 등장했던 여주인공 강지녕의 매력을 따라잡는 것도 모자라, 어떤 면에선 압도하는 인상마저 남긴다.
마의 10회 예고에서, 숙휘공주는 마의 백광현에게 달려가 강제로 품에 안긴다. 시청하는 입장에선 강렬하고 짜릿했다. 그렇다면 숙휘공주의 사랑을 알게 될 마의 백광현의 심정은 어떨까. 당황스러울 것이다. 역병보다 두려울 것이다. 궁이란 좁은 곳. 말 많은 곳. 숙휘공주의 사랑으로 백광현이 대역죄인으로 둔갑하는 건 순식간이 될 것이다. '난 천민이고 넌 공주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말이 아닌 목숨을 담보한 사랑이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을 위기로 내모는 여주인공의 언행을 시청자는 '민폐'로 규정짓는다. 그런데 서브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위기로 내몬다면, 그건 민폐수준이 아니라, 각종 비난과 욕설을 감수해야 한다. 숙휘공주의 사랑은 백광현을 위기로 내몰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숙휘공주는 욕을 먹고 매장당하는 수준을 밟겠지만, 드라마 '마의'의 숙휘공주는 민폐도 사랑이라며 시청자의 응원을 받고 있다.
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백광현마저 숙휘공주의 사랑을 무서워(?)하고,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상황에, 철없는 숙휘공주는 아니라고 용기있게 말한다. 근거가 사람의 마음이고, 본인만 알고 느낄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걸 예감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호기심을 부른다. 모두가 반대하는 사랑을 숙휘공주가 어떤 근거와 설득력을 가지고 용기있게 백광현의 마음을,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지 기대하는 것이다.
숙휘공주의 마의 백광현을 향한 러브홀릭은, 드라마 '마의'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건 캐릭터로서 숙휘공주의 매력과 여배우 김소은의 매력이 절묘한 궁합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이, 매력이 여주인공 강지녕 이요원을 위협한다. 그래서 숙휘공주와 백광현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넘어, 남자주인공과 서브여주인공의 사랑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로, 드라마 '마의'를 보는 또 하나의 시청포인트가 되고 있다.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 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