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수(47)의 재발견이다. '제2의 전성기'란 말이 적절할까. 그녀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의 주연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현지에서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인정을 받았다. 데뷔 26년차를 맞은 그녀에게 '피에타'는 또 다른 도약의 계기가 될 듯하다. 조민수의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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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발표되기 전에 다들 손을 잡고 있었어요. 그러다 황금사자상이 발표되는 순간 어우, 이건…. 현장에 있는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아싸, 우리가 해냈다' 싶었죠. 무대 위에 올라서서 외국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좋더라고요. 뿌듯했어요."
그녀는 "국가대표 같은 기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외국 배우들이 드레스 입고 지나가면 전 괜히 고개를 더 들고 다녔어요. 당당해보이고 싶어서요. 제가 농담처럼 '베니스 놀이'라고 했어요. 베니스에서 신나고 멋지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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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수는 "처음엔 '피에타'를 안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 영화'가 너무 불편했다"는 것. 다소 음침한 분위기에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내키지 않았다. 거기에 김기덕 감독 개인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일단 현장에서 얼굴부터 뵙겠다고 했어요.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들에서 불편한 장면이 표현되는 것처럼 감독님도 그런 분이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굉장히 맑게 다가오시더라고요. 결과적으론 제가 속은 거죠.(웃음)"
그녀는 "촬영을 하면서 의견 충돌은 없었다"고 했다. "그분의 에너지를 쏟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촬영할 때 나쁜 점은 없었어요. 사전에 대본을 보면서 어떤 표현을 할 것인지 다 얘기하고 갔어요."
이어 "그 분을 보면 만감이 교차해요. 전 베니스에 가서 깜짝 놀랐어요. 그 분이 대단한 대접을 받잖아요. 한국에선 표현이 안 되죠. 마치 집밖에선 대단한 일을 하는데 집안에선 칭찬을 안 해주는 것처럼요. 그 분도 그런 것에 대한 덩어리는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라면 국내에서도 그만한 예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만의 작업 방식은 어땠을까? "연기자에게서 자기 연기가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안 기다려줘요. 같이 작업을 할 땐 바짝 정신을 안 차리면 내가 다 놓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한꺼번에 에너지를 확확 쏟아내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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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수는 "황금사자상을 받았지만, 배우로선 변한 게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상품으로 관심이 쏠리잖아요. 지금 제가 관심을 받고 있지만, 또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그쪽으로 관심이 갈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황금사자상을 받은 건 결과적으로 살면서 큰 추억거리의 하나가 되겠죠."
그러면서 그녀의 연기 인생을 바꿨던 세 사람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의 말에서 베테랑 배우로서의 내공이 느껴졌다.
"제가 화장품 신인 모델을 할 때였는데 극작가 김기팔 선생님이 카메라 쳐다보고 예쁜 척 하지말라고 하셨어요. 안방에서 보는 사람들한테 어디 '나 예뻐'하면서 얼굴을 들이대냐고 했었죠. 예쁜 척하지 말라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연기자 선배 김순철, 박근형과의 일화도 조민수의 뇌리에 남아있다. "김순철 선생님은 세트장에 들어갈 때 대본을 안 갖고 들어가시더라고요.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이 공간에 어떻게 대본을 갖고 들어오니? 그건 기본이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지금도 촬영을 할 때 대본을 안 갖고 들어가요. 또 한 분은 박근형 선생님이에요. 어느날 같이 연기를 하는데 제가 며느리로 나왔어요. 그런데 그 분의 눈빛과 대사로 인해 제가 생각지도 못한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 저도 후배들한테 그런 선배로 남고 싶어요."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