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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토리]'충무로의 이단아' 김기덕, 베니스를 울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화제

이정혁 기자

기사입력 2012-09-09 17:19 | 최종수정 2012-09-10 07:56


김기덕 감독은 영화 '아리랑'을 통해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은 '아리랑'의 포스터에 등장한 그의 발.

'충무로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를 울렸다.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은 김 감독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은퇴설, 폐인설 등 온갖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던 김기덕 감독의 인생역전이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제공=NEW
천재인가 기인인가

1960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난 김 감독의 최종학력은 중졸. 가난 때문에 공식 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농업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15세때부터 7년간 청계천 공장에서 일했다. 구로공단을 거쳐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김 감독은 제대 후 프랑스로 건너가 거리의 미술가로 연명했다.

김 감독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서른두살때. '양들의 침묵'과 '퐁뇌프의 연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귀국, 1995년 '무단횡단'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에 당선됐다. 1996년 첫 영화 '악어'를 연출, 감독으로 데뷔했다. 정식으로 영화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전문적 지식을 쌓을 기회도 없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김기덕 감독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영화는 극단적인 폭력, 성폭행, 변태적인 심리 행각 등으로 논란을 일으켜왔다. 대중과 쉽게 소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난색을 표해왔고, 이런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 대부분 저예산으로 제작됐다. '피에타' 또한 순제작비가 2억원이다. 주진모를 발굴한 '실제상황'은 실제 대학로 등지를 오가며 세시간 동안 촬영한 필름을 그대로 편집했다. 투자, 배급, 제작 등 모든 방식이 기존 충무로 문법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매번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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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인설에 휩싸인 김기덕, 거장의 날개 꺾이다

지난 2001년 제 19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영화 '섬'으로 금까마귀상을 수상한 김 감독은 그 후 내로라하는 국제영화제를 휩쓸었다. 화려한 수상 경력은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장동건('해안선') 이나영('비몽') 등 톱스타들이 먼저 러브콜을 보내왔다. 비록 국내 흥행에선 부진했으나, 해외 영화제의 화려한 수상을 등에 업고 거장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연이은 흥행 참패 등은 그의 행보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후배 장훈 감독과의 불화설에 휩싸였으며, 결국 폐인설까지 나돌았다. 3년여간 공식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은 그 과정을 오롯이 '아리랑'에 담아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된 '아리랑'에서 김기덕 감독은 추운 한겨울, 외로운 오두막을 외로이 지킨다. 화장실도 없는 오두막에 눈으로 밥을 지으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폐인 또는 도인과도 같은 김 감독의 3년간의 삶을 스크린에서 접한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못했다. 또 직접 셀프 카메라를 통해 국내 영화인, 정부와 한국영화 산업계 등을 강렬히 비판한 김 감독의 거침없는 행보에 충무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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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자, 다시 관객 속으로

'아리랑'에 이어 그가 다시 제작에 나선 영화 '풍산개'는 확실히 상업적인 측면에서 진일보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 뒤를 이어 만들어진 '피에타' 또한 김기덕표 특유의 잔혹성과 폭력성은 여전하지만 충격적인 반전을 더해가면서 극적 재미를 높였다. 3년간의 은둔 생활로 한때 은퇴설에까지 휩싸였던 김기덕 감독이 대중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의지를 적극 보여주려는 듯,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의 개봉을 앞두고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 6일 국내에서 개봉한 '피에타'는 150개라는 적은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9일 오전 현재 누적 관객 3만 명을 돌파했다.

수상 직후 김 감독은 무대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은 지난 4년 간 나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씻김굿 같은 것"이라는 수상 직후 소감에서 짙은 회한의 심정이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그 누구보다 부침이 심한 인생역정을 이겨낸 이 거장이 이젠 지난 상처를 씻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피에타'의 흥행 성적이 이후 어떻게 나오든지간에 이번 수상은 그에게 충무로의 기존 문법과는 다른 형식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시 안겨준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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