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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판타지를 내세운 MBC '해를 품은 달' 이후 안방극장에 '판타지'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 방영 중이거나 방영을 앞둔 것만 어림 잡아도 예닐곱 편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소재와 장르마저 비슷비슷해 시청자들에게 혼돈을 줄 정도다.
이 두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돌리면 곧바로 tvN '인현왕후의 남자'가 시작한다. '옥탑방 왕세자'와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현대로 오게 된 조선시대 선비가 무명 여배우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김병수 감독은 "사극과 현대극 분량을 5대5로 그려갈 계획이다. 정치적 음모와 로맨스를 더욱 강조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설정한 작품도 있다. 송승헌, 김재중, 박민영이 출연하는 MBC '닥터진'은 최고의 외과의사가 현재에서 1860년대 조선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판타지 메디컬 드라마다. '닥터진'과 표절 공방을 벌이고 있는 SBS '신의'도 설정이 비슷하다. 현대의 여의사가 고려시대로 가면서 역사적 사건들에 휘말리고 고려의 무사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로, 김희선과 이민호가 호흡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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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트렌드가 된 판타지 드라마에 대해 '퓨전 사극'의 진화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던 정통사극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가미해 인기를 끌었던 '성균관 스캔들' '공주의 남자' '뿌리깊은 나무' 같은 퓨전 사극 열풍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과감한 가공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최근의 판타지 드라마들이 대부분 사극과 현대극을 접목해 둘 사이의 이질감과 충돌 속에서 갈등과 재미를 이끌어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퓨전의 진화된 형태가 곧 판타지인 셈이다.
앞서 '해를 품은 달' 같은 인기 드라마를 통해 판타지 소재의 성공 가능성이 검증된 점도 판타지 드라마 열풍을 부채질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퓨전과 판타지라는 설정이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예전보다 훨씬 친숙해지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그래서 시간여행이나 가상의 왕 같은 파격적인 소재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다"며 "시청자들의 감각이 젊어진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방극장의 쏠림 현상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너도나도 성공한 장르로만 몰리다 보니 안방극장의 다양성이 확보될 수 없어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판타지가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 소재 고갈을 판타지라는 방식으로 손쉽게 해결하려 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제작 중인 여러 판타지 드라마들이 서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과 설정이 비슷하다는 사실도 이런 우려를 키운다. 색다른 소재를 저마다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작품끼리 충돌하다보니 오히려 흥미가 반감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더킹 투하츠'와 '옥탑방 왕세자' 사이에서 고전하던 '적도의 남자'가 최근에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도, 시청자들이 판타지에 대해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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